제빵사는 빵을 만들고 벽돌공은 벽돌을 쌓듯 작가는 글을 쓰고 책을 내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 강연이나 책쓰기 워크숍을 운영하는 와중에도 1년에 한 권씩은 거르지 않고 책을 내려 노력하고 있다. 책 쓰는 것 말고 요즘 작가가 해야 하는 일이 또 하나 있다면 그건 '북토크'가 아닌가 한다.
5월에 새 책을 내고 한 달 정도는 전국의 동네 서점을 돌며 북토크를 했다. 성북동 책보냥처럼 서울의 작은 책방인 경우도 있지만 진주문고나 삼일문고처럼 지방에 있는 서점도 많다. 지난주 일요일엔 부산의 크레타서점에 가서 오전부터 독자들을 만나고 책 이야기를 나누었다. 열여섯 명의 신청자가 모인 서점 안은 휴일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그 열기가 사뭇 뜨거웠다.
나는 무엇이 이 사람들을 휴일 아침부터 동네 서점에 모이게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북토크는 단지 몇 권의 책을 더 팔기 위한 프로모션이 아니다. 거기엔 내 책이 독자에게 더 가깝게 가 닿았으면 하는 작가의 간절함이 담겨 있고, 자신이 관심을 기울이는 작가의 책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독자의 바람이 들어 있다. 그리고 적은 인원이지만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순간 책의 가치가 커지고 생명력이 늘어나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북토크에 가면 "지금 이 시간에 다른 일 제쳐두고 여기 와 있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인사 말씀을 꼭 드린다. 그러고 나서 책을 내게 된 배경 설명도 하고 처음 제목이 뭐였는데 무슨 의견과 충고를 받아들여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었으며 원고를 쓰러 간 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등등을 시시콜콜 털어놓는다. 그러니까 북토크에 온 사람들은 책에 나오지 않는 뒷얘기와 작가의 의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작가는 오직 작품만으로 얘기해야 한다'는 고전적인 신념을 가진 분들도 있지만 어차피 글이 영상이 되고 웹툰과 유튜브 콘텐츠가 다시 책으로 변하는 융합의 시대다. 이제는 책도 다른 문화상품처럼 입체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북토크의 좋은 점은 또 있다. 그 책을 처음 보거나 미처 읽지 못하고 오는 사람이라도 막상 행사에 참여해 작가와 마주하게 되면 신기하게도 그 책을 사거나 읽고 싶어지는 것이다. 북토크는 강연이 아니기 때문에 '저 인간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고 팔짱을 끼고 노려보기보다는 호의의 눈길로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음 보는 독자들 앞에서도 작가가 떨지 않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이유다.
나도 작가이기 이전에 독자이기에 다른 북토크에 많이 간다. 얼마 전 갔던 차무진 작가의 북토크는 동료 작가와 출판인들이 너무 많이 와서 마치 작가들의 동창회를 보는 것 같았다. 장일호 작가의 북토크에서는 "작가님이 샤이니 종현의 글을 써 줘서 너무 고마웠다"는 참가자의 소감을 듣고 찡해지기도 했다. 김탁환, 임지영, 윤영미, 정용실 등 친한 작가분들도 북토크에 가서 만나면 늘 새로운 사람 같아 보여 신기했고 김민정 시인이 사회를 봤던 유진목 시인의 파주 북토크에서 시인을 따라 함께 울고 웃었던 기억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요조 작가나 마야 리 랑그바드처럼 아예 우리 집으로 불러 북토크를 한 적도 있다. 그들은 모두 자기 책 앞에서는 못 하는 게 없는 마술사였고 작두 타는 무당이었다.
가수와 시인이 분리되지 않던 시절엔 '음유시인'이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전하고 다녔다. 나는 북토크의 작가들이 현대의 음유시인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바람 부는 날엔 동네 서점이나 작은 서점으로 가시라.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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