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웃음보따리 회원들과 함께 경기도 가평 명지산 계곡의 한 펜션으로 1박 2일 소풍을 다녀왔다. 웃음보따리는 내가 대장암 3년 차일 때 만든 암경험자 중심의 웃음치유 모임인데, 7월 말이면 만든 지 13년이 된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오프라인 모임을 하지 못한 데다 세상을 뜨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분들이 많이 생긴 탓에 한때 100명이 넘었던 회원의 수는 30여 명으로 줄었다. 인원은 줄었지만 지금 회원들의 연대감은 내가 속한 다른 커뮤니티보다 훨씬 강하다. 대부분이 암을 겪었기에 삶에 대한 자세가 비슷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의 깊이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암을 겪지 않은 회원들도 10여 년을 함께하며 암 재발에 대한 두려움과 사소한 행복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터라 암경험자 회원과 다르지 않다.
소풍엔 14명이 함께했다. 우리가 묵었던 펜션 하늘마루는 2012년부터 몸과 마음이 힘들 때마다 가끔 쉬러 가는 곳이다. 이름만 들어도 힐링이 되는 펜션은 투자자문회사 대표였던 주인이 25년 전 휴가를 왔다가 계곡의 커다란 바위에 마음을 빼앗겨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고 한다. 외딴곳에 자리 잡은 데다 투숙객 입장에서는 까칠하다고 느낄 만큼 까다로운 이용 규칙을 고수하기 때문에 쉼과 힐링을 함께 누리기엔 최고의 장소다.
회원들은 이름 대신 닉네임을 부르는데, 닉네임은 30여 년의 나이 차이와 남녀 벽을 허무는 묘한 힘을 갖고 있다. 유방암 경험자로 초등생 남매 둘을 둔 40대 중반의 A씨부터 우울 증상 해결을 위해 10년 전 웃음보따리를 찾아온 70대 후반의 B씨까지 동네 아이들처럼 웃고 떠들며 놀았다.
짝짓기, 신발던지기, 미니축구를 하며 승부욕을 불태웠고, 서로 밀고 당기다가 함께 넘어져 숨을 헉헉 몰아쉬면서도 배를 잡고 웃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물에 첨벙 뛰어들었다가 아담하게 잘 가꿔진 정원에서 들꽃에 실컷 취했다. 갖가지 약초를 넣고 장작불 솥에 끓인 닭백숙을 먹으며 "최근 10년 새 가장 행복한 순간" "우리 앞으로 쭉 이랬으면 좋겠다"고 모두 한마디씩 했다.
댄 뷰트너라는 미국의 저널리스트가 세계적인 장수촌을 직접 방문해 찾아낸 장수 비결을 소개하는 넷플릭스 시리즈 '100세까지 살기-블루존의 비밀'을 본 적이 있다. 그가 일본 오키나와 장수마을에서 확인한 비결은 치유음식, 저칼로리 식단, 소식, 저강도 신체활동, 공동체 활동, 삶의 비전과 가치(이키가이, 生き甲斐) 등 6가지다. 103세 장수노인은 인터뷰에서 "웃음 덕분에 이렇게 오래 사는 것"이라고 했다.
'암, 그들은 이렇게 치유되었다'를 쓴 켈리 터너는 의사들의 예상을 뒤엎고 난치암을 이겨낸 사람들의 10가지 치유 요소로 사회적 지지, 살아야 할 강력한 이유 찾기를 꼽았다. 오키나와 장수마을 주민과 난치암을 이겨낸 사람들은 스트레스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인간관계가 장수의 원천이 되고 암을 이기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1박 2일 내내 웃음이 함께했던 지난 소풍 사진을 한 장씩 열어보며 웃음보따리도 회원 서로에게 강력한 장수의 에너지를 주는 장수마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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