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무조건 옳다'라는 구호를 써 붙인 플랫폼 스타트업의 사무실을 본 적이 있다. 바야흐로 디지털 대변환의 시대에 디지털 경제 소비자는 왕좌에 올라 앉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쟁적 플랫폼들은 소비자들의 기호를 파악해 화면 구성부터 상품 진열, 서비스 내용까지 소위 소비자경험(UX)을 최적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소비자들의 기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플랫폼이나 그 플랫폼 위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공급자는 이내 도태되고 마는 현실을 플랫폼 시장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플랫폼의 자율규제 문제에 있어서도 이미 현명한 플랫폼들은 소비자경험의 증진 차원에서 적극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플랫폼에 대한 규제정책을 논의할 때 앞서 관련 규제법안을 도입한 유럽과 일본의 법제를 참고하려는 시도가 많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의 온라인 플랫폼 관련 법안들은 도입 취지와 배경 면에서 우리나라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유럽의 경우는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기업가치 88조 원 이상)에 대한 규제가 중심이다. 일본은 자국 플랫폼 산업을 위한 균형적 고려, 즉 '독점기업에 대한 자국 산업 보호'가 기본적으로 법 제정의 주요 목적이다. 우리나라 시장은 세계시장과 비교해 현저하게 작다. 글로벌 시장에 비해 매우 작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스타트업들은 뛰어난 기술력과 혁신력으로 세계적 빅테크 기업에 맞서 자국 산업 보호에 앞장서면서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장경제 국가 중에서 구글(내지 미국 기업)이 검색광고 1위가 아닌 나라가 우리나라뿐이라는 것은 대한민국의 토종 플랫폼들이 국가산업보호, 나아가 소비자보호까지 커다란 일익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플랫폼 규제 법안들이 독점 플랫폼에 대한 규제라면, 스타트업과 광범위한 플랫폼에 적용되어선 안 될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스타트업 생태계 특성상 앞으로 얼마나 많은 업체가 규제의 수범 대상에 해당될지 예측할 수 없고, 이는 새로운 스타트업의 성장과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만약 플랫폼 규제 법안들이 플랫폼 자체에 대한 규제라면 분명 중복 규제와 과도한 규제가 문제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반경쟁행위와 불공정행위에 대해 유통 거래 분야 중 '가맹사업 거래, 대규모 유통업 거래, 대리점 거래'와 같은 특정한 분야에 대한 공정거래 규제보다 확대된 '거래공정화 규제 특별법'이 마련되어 있다. 그 밖에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도 온라인 플랫폼에 대해 규제권한을 갖고 있어 계약 자유의 원칙을 침해하고 과도한 수준으로 플랫폼을 규제하여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면서 산업과 서비스 특성을 고려치 않은 비현실적 규제들이 이미 흘러넘친다.
글로벌 경제의 주류적 질서가 디지털 경제로 전환되는 중대한 변환의 시기에 우리나라가 이 질서를 선도하려면 규제혁신을 통한 자율규제 정책으로 전환이 추진되어야 함이 자명하다. 온라인 플랫폼 산업은 이제 막 성장하려고 하는 신생시장이다. 게다가 우리 플랫폼들은 글로벌 빅테크기업들과 힘겹게 싸움을 하고 있는 상황임을 직시하면 섣불리 유럽식 법률규제를 도입하거나, 사실상 강제적 자율규제를 도입하는 것은 구한말 외세에 맞서 일어난 동학농민군을 관군이 진압한 역사를 되풀이하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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