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는 세상을 위해 모든 것을 할 듯 말한다. 승자가 되면 달라진다. 세상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신성하게 만드는 쪽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누구 이야기인가? 대통령들이다. 일을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은 참모들이다. 대통령이 더 강하고 위대해야 자신들의 권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이들에게 의존해 일하면서 당과 내각은 주변적 역할에 머물 때가 많았다. 입법·행정·사법부 사이의 균형도 위협받았다. '대통령 관심 사안'을 앞세우는 이들 비서 권력 때문에 의회정치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위세를 떨친 것은 맹렬 지지자와 극렬 반대자들이었다. 이들의 열정과 에너지는 대통령 권력을 둘러싼 싸움에 일상적으로 동원되었다. 그 결과 '다원화'보다 '양극화'가 정치 영역은 물론 시민 개개인의 내면까지 지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통령들이 번갈아 가면서 사회를 적대와 증오로 분열시키는 일을 해 온 것이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데, 그러려면 몇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는 '윤석열 행정부·국민의힘 정부'라는 표현을 공식화해야 한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정당 책임정치'를 공약하며 "문재인 정부 대신 더불어민주당 정부"라고 불리는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2022년 3월 10일 국민의힘 선대본 해단식에서 윤석열 후보도 "윤석열의 행정부"인 동시에 "국민의힘이라는 여당의 정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말했으면 지켜야 한다. 누구나 미국 정치에 대해서 말할 때는 '바이든 행정부·민주당 정부'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대통령 권력을 더 크게 만들려는 대통령 주변인들 때문에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 같은 사인화(私人化)된 표현을 계속 쓴다. 윤석열 행정부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워야 입법·행정·사법의 기능을 나눠 맡는 세 정부 사이의 민주적 균형을 기대할 수 있다.
둘째, 정기적으로 비판 언론의 질문에 응해야 한다. 집권 기간 내내 평균 주 1회 이상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도는 아니더라도, 대통령은 자주 언론 앞에 서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방송, 원하는 언론인하고만 대화하는 대통령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 정치 권력이 비판 언론을 존중하지 않거나, 정치 권력 스스로 언론을 만들어 여론을 동원하려는 욕구를 절제하지 않으면 전제정(專制政)은 피할 수 없다. 언론 앞에서 실수할까 봐 두려워하는 참모들의 편협한 관점을 제어하지 못하면 대통령은 '숨은 권력'이 되고 숨은 권력은 필연적으로 악용된다. 권력자가 자유 언론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언론 개혁을 말하는 일이 재현되지 않았으면 한다.
셋째, 야당과 정기적으로 만나야 한다. 야당은 민주주의의 중심 기관이다. 야당이 없는 일당제를 민주주의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야당 지도자나 의원들과 상시적 대화와 접촉을 꺼리는 대통령은 민주주의자일 수 없다. 중요한 개혁 사안일수록 야당의 협력을 얻고자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외교·안보 정책은 여야 사이에서 초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대통령은 월 1회 이상 여야 지도자에게 외교·안보 상황을 브리핑하고, 야당은 충분한 정보와 판단을 공유하는 전제 위에서 대통령과 협력해야 한다. 야당도 인정하는 대통령이 나와야 민주주의가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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