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육아휴직 간 동료가 미운 30대 여성
편집자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뜻의 밈인 '무물'을 아시나요. 한국일보 허스펙티브가 성평등을 주제로 한 ‘무물 콘텐츠’를 격주 금요일마다 연재합니다. ‘대체 이럴 땐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일상에서 흔하게 겪을 법한 다양한 고민 상황을 통해, 함께 성평등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을 내디뎌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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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회 생활 5년 차, 막 30대가 된 미혼 여성입니다. 또래 친구들처럼 저 역시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고, 여성이 일상 속에서 겪는 차별에 민감한 편입니다. 그런데 요즘 회사에서 마주친 상황 때문에 여성 동료를 싫어하게 되거나 편견을 갖게 돼 마음이 힘듭니다.
저희 회사는 10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으로, 여자 직원은 저를 포함해 3명입니다. 편의상 A, B와 저라고 할게요. 저를 제외하고 모두 기혼이고, 제가 막내로 입사했어요.
발단은 2년 전 A가 출산휴가에 이어 육아휴직을 써서 1년 넘게 회사를 비운 것이었어요. 그로 인해 회사 구성원들이 A의 일을 나눠 맡아야 했죠. 당시에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제도는 활용하라고 있는 거고, 직원들이 배려해줘야 여성 동료도 일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육아휴직에서 돌아온 A가 복직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퇴사를 선언했다는 거예요. 복직을 기다리며 A의 빈 자리를 메운 동료들과 회사 대표님은 어이가 없었죠.
이제는 B가 갑자기 임신을 했다며 출산 계획을 회사에 보고했어요. A의 선례가 있어서인지 곧 휴직에 들어갈 B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더라고요. '저렇게 출산하고 돌아와 또 그만두는 거 아냐?' 수군거림도 있고요. 겉으로 동조하지는 않았지만, 저도 속으로 비슷한 걱정부터 생겨요. B가 휴직한 기간 동안 업무는 막내이자 유일한 여성 직원인 제가 독박을 쓰게 될 텐데...
몇 해 전 구직 때만 해도 면접관이 여성 지원자에게만 '출산 계획 있느냐' 물어보면 시대착오라 생각했어요. 분노도 했고요. 그런데 일터에서 이런 일을 겪다 보니, 저 역시 편견을 갖게 돼요. A의 후임으로 오는 직원은 남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니까요.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최 대리·30·회사원)
A. 최 대리님, 지난 1년여 시간 동안 묵묵하게 동료의 빈 자리를 메우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특히 코로나19 유행으로 가뜩이나 인력난을 호소하는 중소 사업장에서 분투하셨을 모습을 생각하니, 먼저 정말 고생 많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어요.
누구나 자신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현실 세계와 맞닥뜨리면 혼란스러워질 겁니다. 특히 30대 여성으로서 그간 한국 사회의 많은 성차별을 목격하고 문제 의식을 가진 최 대리님이었기에, 더욱 회사에서 일어난 일을 두고 당혹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 육아휴직을 비롯해 노동자의 모성·부성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는 '양성평등기본법'에 기초한 모든 노동자의 법적 권리에 기반을 둔다는 점을 짚고 넘어 갈게요.
양성평등기본법
제25조 모성, 부성의 권리 보장
국가기관 등과 사용자는 임신, 출산, 수유, 육아에 관한 모성권, 부성권을 보장하고, 이를 이유로 가정과 직장 및 지역사회에서 불이익을 받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함.
Q. 법적 권리라고 해도, 제도로 인해 실제 저처럼 고생하는 사람이 생기는 걸요. 결혼 생각이 없는 저 같은 사람이 매번 육아휴직자의 뒷감당을 해야 하는 거라면 제도에 허점이 있는 것 아닐까요.
A. 분명 이 상황에는 '빈틈'이 있습니다. 그러니 최 대리님이 고통받을 수밖에요. 그런데 빈틈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여기서 발상의 전환을 해볼게요.
분명 노동권을 가진 주체인 노동자는 복지 등 제도를 통해 혜택을 봐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한 사람(A,B)의 권리가 보장되면, 다른 사람의 업무 강도가 세지거나 노동권을 침해당하게 됩니다. 일터에서 일·생활 균형(워라밸)을 보장하고 가족친화제도를 확립해야 하는 회사(사용자)가 제 의무를 다하지 않는 거죠.
회사의 빈틈으로 인해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진 모성보호제도(출산휴가, 육아휴직)가 노동자 간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제로섬 게임’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래는 교육학 박사이자 육아정책 전문가인 신하영 세명대 교수의 설명입니다.
"사전에 대책을 세우지 않은 회사의 잘못"
노동자인 A와 B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누리는 것에 따라 회사나 사용자가 감수해야 하는 비용을 다른 노동자에게 지우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A의 출산 전까지, 임신 사실을 알린 이후 적어도 6개월 정도 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회사는 이를 대비하는 조직 관리에 들어갔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A의 임신 기간 동안 회사는 대체휴직자를 구하거나, A를 제외한 (현재인원-1명)이 할 수 있는 업무량으로 직무를 재배치 하거나 생산량을 조정했어야 합니다.
10인 미만 작은 사업장이라면, A의 육아휴직 만큼 절감된 인건비(육아휴직자는 통상임금의 80%, 최대 150만원 수령 가능)를 통해 대체휴직자를 구하거나, 업무의 일정 부분을 외부용역을 주거나 전산화하는 방법도 강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 대리님이 다니는 회사는 A의 기존의 동료와 회사 대표가 인력 보충 없이 ‘빈 자리를 메우거나’, B의 업무를 최 대리님에게 ‘독박을 씌우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일의 총량은 줄어들지 않았는데, 그 일을 하는 1인의 노동자가 휴직을 하게 되었으니, 나머지 사람들이 ‘원래 일의 양보다 초과해서’ 더 하지 않으려면 당연히 사전에 대책을 세웠어야 합니다.
Q. 회사가 책임을 다 하지 않았다는 점에 공감해요. 잠깐이나마 동료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낸 제가 부끄러워지네요. 이럴 때면 나라는 '아기 낳아라'며 발 벗고 나서고 있지만, 정작 온갖 눈총과 부담은 일터의 여성들에게 쏠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네요.
A. 최 대리님도 '당장 내가 힘드니 남성 직원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듯, 우리 사회가 너무나 당연히 '출산, 육아, 돌봄은 여성의 일'이라 전제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남성 직원은 육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함께 일하기 좋은 동료인가요. 남성 동료 역시 가정을 이루면 여성과 똑같이 돌봄의 책임을 갖게 됩니다.
일·가정 양립을 연구해온 전지원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 책임연구원은 "고령화와 함께 자녀뿐 아니라 부모님이나 배우자를 돌봐야 하는 경우도 늘어나 앞으로는 돌봄 부담을 진 사람이 꼭 '여성'으로 특정되지 않을 수 있다"며 "돌봄을 자녀를 출산한 '엄마'만의 일이 아닌, 누구나 다른 사람을 돌보고 돌봄을 받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특정 성별에 '돌봄'에 대한 과잉 책임을 지우지 않고, 남녀 균등하게 일과 돌봄을 병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면 아마 '후임은 남성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혹은 면접관이 '출산 계획은 언제냐' 물을 일도 없을 것입니다. 결국 출산과 육아, 돌봄에 대한 성별 고정관념 때문에 이 같은 갈등이 빚어집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전체 육아휴직자 16만9,345명 중, 남성(아버지)이 휴직을 한 경우는 22.7%로 여성(77.3%)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스웨덴의 남성 육아휴직자는 45.3%로 여성과 큰 차이가 없고요. 여전히 우리 사회는 성평등 선진국에 비해 돌봄을 여성의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큽니다.
개선되는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휴직을 신청한 국가공무원 중 남성이 41.5%에 이르렀습니다. 국가공무원의 경우 △자녀당 육아휴직 기간을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부부 모두 경력에 불이익이 없도록 했으며 △소득감소 부담을 덜고 △대체인력 활용을 높인 덕에, 마음 편히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이들이 증가한 것인데요. 비단 공직사회뿐 아니라 민간기업과 소규모 사업장에도 이 같은 문화가 뿌리내린다면 더 이상 '여성만' 육아휴직으로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차별에 민감하고,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최 대리님은 누구보다 사회의 부당함을 바꾸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힘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최 대리님의 시선이 향할 곳은 육아휴직을 사용한 동료가 아니라, 그의 공백을 메우지 않은 회사, 그리고 작은 회사가 가족친화경영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사회와 정부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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