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0년 전인 1992년으로 돌아가보자. 아직 인터넷이 보급도 되기 전이고 일부 선구자들이 PC통신 하이텔, 천리안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이때 메타버스 세상, 인공지능 서비스, 원격근무와 같은 미래를 우리 법제도가 규제의 전제로 삼고 있었겠는가? 아날로그 시절에 만든 법을 디지털 산업에 확장 적용하는 건 규제를 사실상 신설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날로그 법에서 비롯된 각 부처의 규제는 신기술, 신산업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임시허용된 비대면 의료의 본격 허용이 논의되고 있지만, 비대면진료를 막는 규제라 불리는 의료법 제17조(진단서 등)는 의료인이 진단서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직접 진찰할 것'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이 규제는 의료인이 아닌 자가 의료인인 것처럼 진찰하고 진단서를 발행하는 것을 막는 규제이다. 이 규제는 전화가 보급되기도 전인 1963년 의료법에 '무진찰진단서의 교부금지'로 신설된 규정이다. 비의료인에 의한 진료 또는 의료인이라 할지라도 진료도 하지 않은 채 진단서를 발행하는 것을 막으려던 취지였다.
그런데 그 규제가 정보통신이 발달해 전화 또는 화상으로 원격진료가 가능한 시대에 '비대면진료 금지' 규제로 변신한다. 대법원도 여러 차례 이 규정은 의료인이 스스로 진찰하는 것을 규제하는 것이라 판단하였음에도, 정부가 아날로그 규제를 확장해 디지털 산업에 확장 적용하는 악습으로 만들었다. 결과는 '비대면진료 금지' 규제로 이어져 원격의료 산업의 발달을 수십 년째 막고 있다.
그러나 경쟁국은 다르다. 특히 중국은 2015년부터 '낡은 잣대로 신산업을 규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리커창 총리가 천명하면서 '대중창신 만중창업'을 내세워 불과 몇 년 만에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법을 제정할 때 예상하지 못했던 '낡은 잣대'를 들고 신산업에 적용하는 것은 미래세대의 성장을 시기하는 기존 산업의 횡포이며 그것이 경제성장의 걸림돌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이를 금지하는 정부 정책을 선포한 결과다. 우리도 행정부가 낡은 법을 신기술, 신산업에 적용해 이를 탄압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에서 중국 정부와 같은 선언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행정법은 행정부에 유권해석을 할 권한을 허용하고 있다. 책상머리에 앉아 법을 해석함으로써 낡은 규제가 미래세대를 가로막는 '행정해석 몽니'를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금지하면 될 일이다. 위에서 언급한 무진찰진단서의 교부금지 규제를 비대면진료 금지 규제로 바꾸어낸 정부의 몽니는 끝내 대법원의 판결 기조까지 바꾸어 대법원도 최근에는 비대면 진료는 의료법상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이라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지 않고 행정해석으로 법을 바꾸는 '이현령비현령'은 우리나라의 혁신을 가로막고 우리나라를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로 전락시킨 주범이다.
대통령제 아래에서 의회가 아닌 행정부도 법률안 제출권을 갖고, 행정부가 시행령 이하 행정법규 제정권을 갖고 악마의 디테일을 행사하는 나라. 국회의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규제법안을 쏟아내는 나라. 220개가 넘는 각종 인증규제로 스타트업을 신음하게 만든 나라. 개인정보보호규제를 20여 년 전에 만들어 데이터유통을 가로막아 인공지능산업의 글로벌 경쟁에서 스스로를 도태시킨 나라. 이 모두가 2022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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