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사랑받았던 가수 임종환(2010년 사망)의 부고에 후배 가수 윤종신은 "나이 차가 좀 있는데 꼬박꼬박 '종신씨'라고 높여주셨던 형님으로 기억한다"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 특별할 것 없는 단신 뉴스를 읽으며 나는 엉뚱하게도 '종신씨'라는 호칭에 집중하고 말았다. 아직도 '씨'라는 호칭을 높임말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이 땅에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해서였다. 알다시피 요즘은 어디 가서 '성준씨'하고 이름 뒤에 씨를 붙이면 '쟤가 나를 하대하는구나'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일단 밖에서 만난 사람들은 직급 뒤에 님을 붙여 부른다. 사장님 부장님 대리님처럼 직책 뒤에 님 자를 붙이는 건 너무 당연하지만 이미 높임의 의미가 담겨 있는 대통령도 '대통령님'이라 부르게 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각하'라는 존칭을 쓰지 말라고 부탁하면서 시작된 존칭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우리가 모든 사람의 이름에 님 자를 붙이는 지경이 이르렀다는 것이다. 예전에 브런치에서 "~씨라는 호칭을 거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직장 내 차별적 호칭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상사들이 남자 직원들에게는 "철수야" 또는 "김철수"라고 그냥 이름만 부르면서 여자 직원에게는 "~씨"라고 부르는 게 싫었다는 것이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씨 자를 붙이느니 차라리 반말로 불러 달라니. 씨 대신 '님'을 붙이게 된 게 언제부터였는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내 기억으로는 MBC 대학가요제에서 심사위원들을 소개하면서 "작곡가 ○○○님입니다"라고 한 게 처음 같은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1982년 세운상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로그래머들은 출력물에서 사람 이름 종성의 존재 여부 때문에 "○○○은(는)… ○○○이(가)…" 등으로 출력하다가 한 고교생 프로그래머가 "님"을 붙이는 해결 방안을 내놓으면서 세운상가 프로그래머들 사이에 퍼졌다는 것이다.
이후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이름 뒤에 님 자를 붙이면서 씨라는 호칭은 더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에 어떤 분이 '씨'와 '님' 호칭에 대해 질문을 했더니 '씨'를 쓸 수는 있지만 연령이 다양한 사람들이 대화하는 공간에서 '씨'를 쓰면 불쾌하게 여길 대상이 있을 수 있는 반면, '님'을 쓰면 그러한 문제는 없게 되니까 가급적 '님'을 쓰는 게 원만한 의사소통에 유익할 것이라는 답을 내고 있다.
말이라는 게 한 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것이니 굳이 '씨'를 써서 시빗거리를 만드느니 일괄적으로 '님'을 붙여 속 편하게 살자는 것이다. '극존칭 과소비'를 부추기는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님은 임금이나 선생, 과장처럼 직책을 나타내는 데 붙이는 존칭이었다. 그런데 직책을 맡지 못한 아랫사람에게 최소한의 예우를 해주느라 씨 자를 붙이다 보니 그만 하대의 의미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미 변해버린 말의 의미를 억지로 되돌려 보겠다고 외로운 독립군처럼 혼자 광야에 서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원래 그런 뜻은 아니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는 동네 친구들이나 '독하다 토요일' 멤버들끼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씨' 호칭을 쓰고 있는데 대영씨도 세미씨도 미경씨도 하대라는 생각 없이 잘 쓰고 있다. 아마 영화 '헤어질 결심'의 탕웨이에게 '탕웨이님'이라고 부르면 그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씨라는 호칭이 그렇게 나쁩니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