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시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휠체어를 타는 딸과 함께 호주 콴타스항공을 이용했던 2018년, 자리에 앉은 우리에게 승무원이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그 질문에 놀랐다. 비행기에서 비상시 탈출교육을 받을 때마다 '만약 딸과 함께 있다가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매번 했는데 이걸 진짜 와서 물어봐 주다니. 그 전에도 딸과 함께 한국 국적기를 탄 적이 있었지만 이런 질문을 구체적으로 받은 건 처음이었다. 국적기 승무원들도 착석 후에는 우리 자리로 와서 친절하게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달라'는 말은 하고 갔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비상상황이 되면 구체적으로 누가 도움을 줄지 정하자'는 내용을 호주인 승무원에게 들을 줄이야.
아, 물론 국적기 승무원들이 했던 '불편한 점 있으면 언제든 알려주시라'던 친절한 말은 유사시 대응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싶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승객이 스스로 판단해 적극적으로 요구한다는 전제다.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방식으로 탈출을 도울지 미리 생각할 기회를 줄 뿐 아니라 '실제로 탈출시 구체적인 지원'을 미리 알려 준다는 게 훨씬 더 믿음직스러운 대응이란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폭우가 서울 신림동 반지하방에 살던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반지하방 침수 비극을 보며 대통령도 그 자리에 가서 "왜 대피를 못 했답니까?"란 질문을 했다고 한다. 모두가 그 질문에서 시작했다. "여자들만 살던 곳이라 방범창이 너무 단단하게 달려 있었다" "반지하방이라서 그렇더라"는 말에 반지하방 건축 자체를 금지한다는 정책이 부랴부랴 나왔다. 하지만 많은 저소득층의 유일한 살 곳인 반지하방 자체를 없앤다는 해결책이 전부여야 할까? 장애인 가족이 왜 저소득층으로 추락하는 경향이 크며, 이들이 반지하방에서 사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는 없는 걸까?
신림동 가족은 발달장애 언니, 비장애인 동생, 딸, 그리고 그 어머니까지 여성 4명이 반지하방에서 살아야 하는 처지였다. 가족 중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비장애인 동생 한 명이었다. 많은 '만약에'가 떠오른다. 발달장애인에 맞춘 대피 훈련을 공동주택 단위로 준비하고 만일의 경우 어디로 대피할지 알려주는 것이 누군가의 의무였다면? 방범창을 단단하게 달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전반적인 치안이 좋았더라면? 발달장애인 부모 수백 명이 삭발해가며 국가에 요구하는 발달장애국가책임제도가 있어서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 언니를 동생이 부양할 필요 없이 어느 정도 독립하여 살 수 있었다면? 어머니와 딸, 장애인 언니까지 부양하는 여성이 입주 가능한 주택, 공공임대주택이 있었다면?
우리나라 장애인 관련 예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비해 3분의 1에 불과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장애인 복지 예산 비율을 보면 한국은 고작 0.6%다(OECD 회원국 평균 1.9%). 이렇게 평소에도 장애인 복지 투자가 인색한데 재난 대비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번 수해는 올바른 질문을 던질 뼈아픈 기회다. 기후위기 심화로 예전보다 더 센 태풍과 물난리, 폭염과 폭설, 대형 화재가 잦아지면서 장애인 중에서도 특히 저소득층 장애인들은 재난에 더욱 취약해지게 될 것이다. 장애인의 재난대비는 주거, 돌봄을 비롯해 평소의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대책과 맥을 같이해야 한다. '반지하방이라서 그런가'라는 질문과 '반지하방을 없애자'는 답변이 전부일 수는 없다. 이번 비극이 비극으로 소모되고 끝나는 대신 '평소에 어떻게 대비할까'에 대한 거대하고도 복잡한 질문이 필요하다. 담대하고 실질적인 답변으로도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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