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올겨울처럼 에너지 위기가 있을 때는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를 너무 엄격히 적용하기보단 탄력적으로 적용하자는 데에 환경부와 원론적 합의가 있었다."(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 9월 21일)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유보 시 3, 4개월 동안 무역수지가 약 25억 달러 개선된다."(장영진 산업부 1차관, 9월 29일)
잇따른 무역수지 악화와 고조되는 에너지 위기로 수세에 몰린 정부가 최근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유보를 문제 해결 대책의 일환으로 언급하고 나섰다.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는,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12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 약 4개월간 석탄화력발전 가동을 줄이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늘리는 등으로 미세먼지 발생을 최소화하는 정책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가스값이 폭등했고, 이 때문에 에너지 수입액이 늘어 무역수지 적자 폭이 커지고 있으니 급한 대로 올해 겨울에는 LNG 수요를 늘리는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를 하지 말자는 게 정부 논리다.
언뜻 보면 일리가 있다. 모든 경제지표에 새빨간 경고등이 켜지면서 외환위기와는 차원이 다른 공포가 밀려오고 있다는데, 미세먼지쯤은 포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미세먼지는 국민의 건강과 직결돼 있다. 국내 초미세먼지 농도는 2016년 26㎍/㎥에서 지난해 18㎍/㎥까지 낮아졌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4㎍/㎥)이나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기준치(10㎍/㎥)보다 높다. 고농도 미세먼지가 집중되는 계절관리제 기간으로 한정하면, 지난해 기준 24.3㎍/㎥에 달한다.
초미세먼지는 이미 그 자체로 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수백만 명이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으로 조기사망하고 있다.
그래도 경제가 힘들다니까 겨울에 잠시, 네 달 정도는 괜찮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서울대 연구팀이 5월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초미세먼지 단기노출이 우울증 환자의 자살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의 경우, 고농도 초미세먼지에 일주일만 노출돼도 인지능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비단 건강뿐이 아니다. 경제와 산업도 피해를 본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면 국내 수출 주력 상품 중 하나인 반도체 불량률이 높아지고, 항공 및 해운업에선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 대기오염 관련 질병으로 인한 의료비 증가와 노동생산성·농작물 수확 감소 등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막대하다.
그렇다면 현 상황은 과연 이 모든 손해와 위험을 감수할 만큼 시급한 걸까.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8월 초 기자단 티타임에서 "올겨울 가스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호언장담했다. 산업부는 잇따른 설명자료에서도 "동절기 시작 전에 가스공사 LNG 재고가 저장시설의 약 90%에 도달할 수 있도록 적극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참고로 국내 공급되는 가스의 70~80%는 20년 장기계약이 체결돼 있어 비교적 안정적으로 확보가 가능하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할지는 정부 손에 달렸다.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를 유보해 얻는 25억 달러어치 무역적자 개선이 과연 국민의 건강과 맞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만큼 득이 되는 선택일지 부디 깊게 고민해 보기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