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익히 아는 소설 '작은 아씨들'이 2022년 한국 땅에서 펼쳐진다면 과연 어떻게 달라질까? 최근 종영한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이에 대해 대담한 대답들을 펼쳐 놓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변화는 '아버지'의 의미다. 원작에서 네 자매의 아버지는 노예제 폐지라는 대의를 위해 전쟁에 나선 존경할 만한 존재다. 그는 부재함에도 네 자매의 정신적인 버팀목으로서 존재하며, 마지막에는 전쟁에서 돌아와 가족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자매들의 아버지는 다단계, 도박, 사기 등으로 자매들에게 빚만을 떠넘긴 채 도피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자매들의 삶에 부재하지만, 부재하는 아버지는 자매들의 삶을 가난의 끝없는 나락으로 끌고 가는 방식으로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심지어 어머니마저 막내딸의 수학여행 경비를 훔쳐 달아나며 딸들의 인생에서 사라진다. 이처럼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부모는 자매들에게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을 존재로 등장한다.
원기선 장군은 베트남 전쟁, 형제복지원 사건 등을 통해 만들어진 전방위적 비리의 네트워크를 50여 년간 이어오면서 부동산 투기를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력까지 손에 쥘 수 있는 힘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식물인간 상태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권력을 대물림받은 딸인 원상아를 통해 권력을 발휘하며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한다. 아버지의 권력과 부를 잇고 있는 원상아는 아버지라는 괴물을 내면화하며, 아버지는 괴물 같은 딸을 통해 살아 숨 쉰다. 결국 이 드라마에서 아버지는 권력자든 빚쟁이든, 우리가 벗어나야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자녀 세대에게 사라져야 할 저열함과 끔찍함의 끝을 보여주는 '빚 아니면 괴물'일 뿐이다.
청산되어야 할 구세대의 질서에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아버지였던 그리고 아버지가 될 남성들의 권력 또한 포함되어 있다. 이는 이 대담한 드라마의 감독과 작가뿐만 아니라 모든 주요 인물들이 여성들이라는 점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다양한 성격을 가진 주인공들, 끔찍한 악당, 잔인한 행동대장까지도 모두 여성이고, 남성들은 조력자나 하수인으로 등장할 뿐이다. 그러니 이 드라마가 구세대의 질서와 남성의 권력 모두의 상징으로서의 '아버지'로부터의 해방을 소망한다는 해석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원작에서는 아버지가 돌아왔지만, 한국판 '작은 아씨들'에서는 아버지의 권력과 악행을 상징하는 푸른 난초들이 전부 염산에 녹아내리고, 원상아가 염산 물에 내던져지면서 그가 내면화한 아버지의 권력 또한 녹아내린다. 대신 그 자리에는 자매 중 막내인 오인혜와 원상아의 딸 박효린, 이 두 소녀의 관계가 자리한다. 효린의 부모는 인혜의 언니들 때문에 죽었다. 하지만 자기 부모의 악행들을 알고 있는 효린은 자신의 부모보다 오히려 인혜를 더 신뢰하며 그와 가족보다 더 끈끈한 관계를 맺는다.
21세기 한국판 '작은 아씨들'은 과거 아버지 세대의 비리와 악행을 염산으로 녹여버리듯이 완벽히 회생 불가능한 방식으로 청산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대안으로 소녀들의 존재를 제시한다. 이 소녀들은 아버지 세대의 악행을 끊어내고 구세대의 대물림을 거부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대물림을 거부하고 '아버지'를 죽여라. 소녀들은 그렇게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 희망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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