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의 올해 적자가 3분기까지 21조 원을 넘어섰다. 정부가 4분기 전기요금을 올렸지만, 에너지 가격 강세로 올해 누적 적자는 30조 원까지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이를 방치하고 있다.
한전은 적자를 회사채 발행으로 메꿔왔다. 올해 발행 규모가 최근까지 25조4,500억 원으로 지난해 전체 발행액의 2.5배에 달한다. 한전채는 신용등급이 최우량이라 국내 회사채 자금을 빨아들이며, 다른 기업들 자금난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발행 한도가 꽉 차기 직전이다. 한전채 발행은 한전 자본금과 적립금의 최대 2배로 법에 정해져 있다. 한전이 발전사에 대금을 지급하는 날짜는 3~10일 단위로 돌아오는데, 정해진 날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다음 날부터 전력 거래가 정지된다. 최악의 전력 부족 사태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다급해진 정부와 여당은 한전채 발행 한도를 최대 10배까지 늘리는 법 개정에 나서려 한다. 야당도 8배 확대 법안을 내놓았다. 이를 두고 금융계는 불안한 채권시장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이미 국내 공사채 발행액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어 한전채 발행을 늘릴 여지도 적다. 만에 하나 무리하게 발행해 대량 유찰 사태가 빚어진다면 국가신용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가 안정을 위해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려는 정부 의도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국제 에너지 가격이 단기간 내 하락할 것이란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발행 한도 확대는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 남은 대안은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는 것인데, 2008년 정부가 추경으로 한전 적자 일부를 메워준 적이 있다. 그러나 현재 적자는 재정으로 메울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결국 요금 인상밖에 남은 카드가 없다. 물가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동시에 우리 경제를 에너지 절약형으로 바꿔야 한다. 이와 함께 에너지바우처 제공을 확대해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덜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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