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로 한국 축구 용어 중 몇몇 '콩글리시'가 재영어화됐다. 핸들링(handling), 헤딩(heading), 센터링(centering)을 '올바른' 용어 핸드볼(handball), 헤더(header), 크로스(cross)로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서, 전자도 물론 아직 많이 쓰이지만 이제 언론에서는 후자를 더욱 많이 쓴다. 그렇게 흘러가는 추세를 굳이 되돌릴 것까지도 없겠으나 콩글리시를 한국어 어휘로 보면 문제없는 것과 별개로, 엄밀히 말하면 저 말들은 콩글리시도 아니고 올바르지 않은 영어도 아니다.
20세기 초엽 영어에서는 위의 –ing 명사들을 축구 용어로도 썼으나 이제 거의 안 쓴다는 건 맞는데, 특히 '핸들링/헤딩하다'의 동사 handle, head는 영어권 축구 기사나 글에서 여전히 잘 써서, 동명사로서는 얼마든지 나온다. Many beginners avoid heading the ball because they are worried it will hurt(다칠까 봐 헤딩을 꺼리는 초급자가 많다).
영어는 동사+ing 명사가 따로 있느냐 동명사로만 있느냐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한국어에서 명사로 쓰는 '구글링'도 영어는 googling이 동사 google의 동명사일 뿐이나 맥락에 따라 명사처럼 써도 문법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아무튼 '잘못된' 일제 영어를 '올바른' 영어로 바꾸려다 이런 변화가 생겼다. 축구 용어로서 아직 일본어는 헤딩(ヘディング)을 헤더(ヘッダ)보다 훨씬 많이 쓴다. '핸들링'은 덜 쓰고 아직 '핸드볼'은 별로 안 쓰며 주로 '핸드'라 한다. '헤딩'은 루마니아어,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등에서 자국 용어와 함께 아직 널리 쓰인다. 핸들링과 헤딩은 독일어(Handspiel, Kopfball)처럼 자국어 용어인 언어도 많다. 한국어는 콩글리시로 오해받는 '핸들링'이든 영어 '핸드볼'이든 튀는 셈이다.
이제 스트라이커(striker)나 순화어 '골잡이'에 밀린 골게터(goal-getter)도 콩글리시로 오해받지만 영국에서 20세기 초엽까지 쓰던 말이다. 독일어, 네덜란드어, 루마니아어,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 슬로베니아어, 일본어에서는 여전히 잘 통한다. '골게터'는 독일어에서 1930년대부터 확인되는데 영어 직접 차용인지 독일식 영어인지는 불분명하나, 독일 축구의 영향을 적잖이 받은 나라의 언어들에 남은 셈이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신문 기사에서 보인다.
이렇게 실제로 콩글리시가 아니나 오해받아 쓰임이 줄어드는 '유사 콩글리시'도 한국의 역사지리적 또는 문화심리적 변방성의 맥락이 있다. 일본어 안에 뿌리내린 (일제)영어는 상대적으로 오래 남는 반면, 한국어는 짝퉁 일제 옷을 벗고 진퉁 미제(또는 영국제) 옷으로 갈아입으려는 강박이 더 두드러진다. 그래서 짝퉁이 아님에도 오해받기도 한다. 실은 짝퉁이든 아니든 제 것으로 삼아 써먹으면 그만이지만 아직 남들 눈치를 보느라 그럴 여유는 살짝 모자란다. 언어나 문화 전파의 세계사에서 자주 보이는 현상이다. '헤더'와 '핸드볼'은 기존의 동음이의어도 있고 '헤딩'과 '핸들링'이 이미 표준어임에도 영어의 위세에 굽실거린다.
오늘날 한국은 K팝과 드라마, 웹툰의 중심국이다. 중심국이니 꼭 "나 잘났소" 외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변방국 마인드도 있기에 서로 다른 둘의 처지를 오히려 균형 있게 아울러 잘 둘러보는 마음가짐도 지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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