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를 입고 결혼했다. 특별할 것 없는 목적어와 서술어로 구성된 문장이지만 화자가 누구냐에 따라 반응은 크게 갈린다. 남자일 경우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겠지만 여자가 이 말을 했다면 '왜?'를 필두로, 의문과 감탄과 거부감 등 각양각색의 감정을 기반으로 한 질문 다발이 돌아온다. 나는 여성이기에 후자의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왜 바지를 입기로 했나. 이 결정을 내린 후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었다. 약간의 성의를 덧대 독특하니까, 손님 맞이를 같이 하기 위해서 등등 여러 이유를 버무린 대답을 해 왔지만 사실 근본적인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그냥 그렇게 입고 싶었으니까. 앞으로의 삶을 함께할 사람을 소개하는 즐거운 자리에, 멋진 슈트를 입고 기운차게 등장해 내가 초대한 사람들과 보다 편하고 자유롭게 섞이며 어울리고 싶었다. 배우자의 의견도 같았다.
양가 어른들은 반대하지 않았지만, 넌지시 염려를 내비치시긴 했다. 기분 좋아야 할 경사에 불필요한 말거리가 생기지는 않을지, 결혼식에만 입어 볼 수 있는 웨딩드레스인데 나중에 아쉽지는 않을지, 하는 것들이 그 이유였다. 첫 번째 이유는 나도 잠시 고민했던 문제였다. 슈트를 입고 입장하는 신부는 나 역시 실제로 본 적이 없었기에 그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겨우 옷인데, 너무 튀려고 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그러나 슈트를 입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결국 망설였던 이유와 같이, 그것이 겨우 옷이기 때문이었다. 서로 평생 믿고 의지할 반려자와 만났음을 축하받고자 하는 결혼식인데 그 자리에 내가 입고 싶은 옷 한 벌을 입는 것이 대체 무슨 문제가 될까. 아무 일도 아닌 것을 떠나 어떻게 보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이었다.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옷을 맞춤으로 제작하니 내 몸의 결점을 신경 쓸 필요도 스타일링을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옷을 잡아주는 헬퍼도 짐을 맡아줄 '가방순이'도 구하지 않았다. 앉아 있을 것이 아니었으므로 신부 대기실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고 내내 수트를 입고 있을 계획이었기에 연회장 인사를 돌 때 입을 '2부 드레스' 역시 준비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은, 조금이나마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아무 일 없이 즐겁기만 했다. 나는 로비를 마구 뛰어다니며 반가운 하객들의 손을 붙잡거나 껴안고 인사를 나눴다. 입장 시에도 잡아주거나 도와주는 이 없이 혼자 걸어 들어가 배우자를 마주했다. 어른들은 모두 실제로 보니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 보인다는 칭찬을 건넸다. 친구와 지인들은 늦은 시간까지 연회장에 남아 즐겁게 먹고 마시며 우리를 축하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혼식이었고, 내가 드레스를 입지 않았다는 점은 식 진행이나 분위기에 어떤 악영향도 위화감도 주지 않았다.
길게 적었으나 모든 문장을 통틀어 하고 싶은 말은 결국 한 마디다. 신부가 웨딩드레스가 아닌 옷을 입고 결혼식에 등장하는 것이 결코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 또 그 별것 아닌 경험담을 이토록 자세히 적는 이유는 나와 같은 결심을 한, 또는 하고자 하는 이들이 혹시라도 가지게 될 걱정을 덜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결혼식은 내가 주인공이 되는 나의 잔치다. 우리 모두 결혼식에서는 입고 싶은 옷을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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