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2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단체가 요구해온 장애인 권리 예산이 올해 예산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여야를 설득해 국회 상임위 단계에서 관련 예산을 정부안보다 6,650억 원 늘렸지만 결국 증액분의 1.6%인 106억여 원만 승인됐다고 했다. 박 대표는 "가장 주된 이유는 기획재정부가 반대했기 때문"이라며 "기재부는 장애인 권리를 비용 문제로만 바라본다"고 비판했다.
□ '지출 효율화'를 강조하는 정부 논리는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공청회에서 공개한 건강보험 개편안에서도 발견된다. 복지부는 기존 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이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과잉 진료를 유발해 건보 재정 건전성을 해친다"며 지출 구조조정을 핵심 개편 방향으로 제시했다. 매년 법정 비율(건보료 예상 수입의 20%)에 못 미치는 국고 지원을 포함해 재정 수입 측면의 대책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복지부 장관은 기재부 관료 출신이다.
□ 지난달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대기업의 반도체 시설 투자 세액 공제율이 여당안(20%)은 물론 야당안(10%)보다도 낮은 8%로 확정된 일로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의지는 적잖이 금이 갔다. 이 또한 기재부 작품이었다. 여당 요구를 따랐다간 법인세 세수가 매년 수조 원씩 줄어들 거란 논리로 한 자릿수 공제율을 관철해냈다. 하지만 대통령이 뒤늦게 반도체 세제 지원 확대를 지시하면서 기재부는 새해부터 여소야대 국회를 상대로 세법을 다시 고쳐야 하는 어려움에 처했다. '고충처리'인지 '자업자득'인지는 알 수 없다.
□ 중증만 100만 명인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 누구나 돈 걱정 없이 치료받는 의료체계를 지향하는 건보 보장성 확대가 비용 문제로 간단히 재단될 수 있는 사안인지 의문이다. 전략산업 육성과 같은 국가적 미래 준비 정책은 말할 것도 없다. 세금을 쓸 곳에 안 쓰고 인색하게 군다는 여론이 형성될 경우 정부가 떠안을 정치적 손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모피아(경제관료 집단)를 대거 요직에 등용했을 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들에게 너무 의지했다간 정부의 비전마저 '구조조정'될 수도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