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한 케이블 채널에서 만들었던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와 그 후속작인 '스트릿 맨 파이터'를 유튜브에서 종종 찾아본다. 나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도 좋아하지만 몸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어쩐지 삶을 더 유연하게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관심이 간다. 특히 온몸을 음악에 '얹어서' 춤을 추는 사람을 보면 묘한 희열도 느낀다.
스트리트 댄스의 매력은 뭘까? 나는 예상할 수 없는 즉흥성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즉흥성은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데, 스트리트 댄스의 특징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틀(battle) 문화가 내 앞에 놓인 인생과 비교해도 큰 괴리감이 없기 때문이다. 배틀은 같은 음악을 틀어놓고 각각 자신만의 느낌으로 춤을 추는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춤을 추는 순서조차도 무작위라 그 즉흥적인 긴장감은 배가 된다.
명색이 배틀이니 승자와 패자가 나뉘겠지만 이건 재미를 위한 요소라 생각한다. 종종 심사위원의 취향에 따라 배틀의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배틀에서 중요한 것은 그 예상하지 못한 음악을 듣고 내 느낌으로, 내 마음대로 춤을 추는 댄서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음악을 듣고 춤을 추는 스트리트 댄서들은 그 누구도 비슷한 느낌을 보여주지 않는다. 비슷한 동작을 하는 순간 그는 카피 댄서가 되는데, 그와 함께 음악과 잘 맞는, 자기만의 느낌을 잘 살린 춤을 추는 댄서는 열렬한 환호를 받는다.
인생을 여러 번 살아본 사람이 있을까? 내가 아는 한 도깨비를 제외하고는 없다. 우리는 스트리트 댄서가 평소에 각종 음악을 들으며 연습하듯 다양한 경우의 삶을 살아간다. 처음 겪는 일을 만나서 실패하기도 하고 혹시나 한번 들어봤던 삶의 음악이 나오면 웃으며 가뿐하게 살아낸다. 이 지점이 바로 내가 스트리트 댄스를 좋아하는 이유다. 여러 가지 음악을 듣고 나만의 춤을 만드는 것은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나만의 삶을 만드는 것과 상당히 닮았다. 그리고 누군가를 카피하기만 하면 발전이 없다는 것마저 똑같다.
나는 스트리트 댄스 장르 중에 특히 파핑(popping)이라는 장르를 좋아한다. 파핑은 순간적으로 몸 근육에 힘을 주어 강하게 튕기는 것처럼 보이는 춤인데, 음악의 속도와 음악을 구성하는 악기들의 세밀한 표현에 탁월하다. 우리는 몸의 구석구석에 근육을 가지고 있는데 등, 가슴, 허벅지의 큰 근육은 물론이고 손목과 팔꿈치 사이의 전완근, 종아리, 목과 손가락에도 근육이 있다. 이 수많은 근육을 어떻게 쓰는지는 각 파핑 댄서의 몫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삶이라는 음악을 어떻게 연주할지는 무대 위 우리의 선택이다.
파핑 댄서들은 주로 펑크(funk) 음악에 춤을 춘다. 요즘에는 다양한 전자장비 덕에 일렉트로 펑크나 P-펑크 등의 장르로 파생되긴 하였으나 주로 곡 전체가 일정한 패턴을 가진다. 베이스 기타와 드럼으로 반복되는 리듬을 가지고 그 위에 각종 양념 악기나 보컬이 얹히는 구조다. 비슷해 보이는 삶이지만 위에 얹어지는 각자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달라지는 인생이라는 음악. 역시 닮았다!
어쩔 수 없다. 나는 80세 할아버지가 되어도 스트리트 댄스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 형편에 맞춰서 들리는 음악에 즉흥적으로 춤을 출 것이다. 심사위원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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