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운명 좌우하는 척도는 사건 대응
참사 후 정권 위기관리 급급한 尹 정부
누르기만 하면 국민공감 얻을 수 있나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국가 지도자의 성공과 실패는 연합정부의 안정이나 유권자의 만족으로만 측정되지 않는다. 진짜 척도는 사건에 대한 대응이라고 전 영국 총리 해럴드 맥밀런은 단언했다.(‘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 슈테판 코르넬리우스)
튀르키예 대지진으로 시험대에 오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보면 공감 가는 진단이다. 에르도안의 경우 정치 입문부터가 대지진이라는 사건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1999년 1만7,000여 명이 사망한 규모 7.6 강진 이후 정부 심판론 바람을 타고 권력을 잡은 그가 이번 지진으로 24년 전과 같은 시험대에 올라 있다. 20년 집권 철권 통치자의 운명도 갈리는 판국이니 정치에서 정말 중요한 건 사건 대처 능력일지 모른다.
2005년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를 강타해 1,8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초특급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도 사건 대응이 지도자의 운명을 바꾼 대표적 사례다. 강한 바람과 폭우에 제방이 무너지면서 뉴올리언스는 물에 잠겼고, 고립된 주민들은 구호품을 받지 못한 채 죽어갔다. 압권은 물 위에 시체가 둥둥 떠다니는데도 허리케인에 잘 대응하고 있다는 초기 정부 발표였다. 대비 소홀과 늑장 대응, 분산된 의사결정 구조가 원인으로 조사됐다. 9·11 사태를 무사히 넘겼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하다가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
159명의 사망자를 낸 이태원 참사도 윤석열 정부로선 시험대였다. 인파 대비를 소홀히 한 인재였지만, 의외로 정권책임론은 미풍에 그쳤다. 사태수습, 책임규명, 재발방지라는 위기관리의 3박자로 구색을 갖췄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사고 다음 날 국가애도기간을 지정했고, 경찰에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책임규명에 나섰으며, 다중인파 관리 대책도 내놓았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는 안전한가. 흔쾌히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미 의회는 카트리나 사태 이후 22회의 청문회, 83만8,000쪽의 자료 검토, 325명의 증인 인터뷰로 실패 원인을 철저히 연구했다. 그렇게 해서 국가가 재해를 예방하고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것이라는 신뢰를 회복했다. 돌아보면 윤 정부는 정권의 위기관리에 더 급급한 모습이었다. 여당은 두 달 남짓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기간 야당 의원의 ‘닥터 카’ 탑승 논란만 물고 늘어졌고, 대통령실은 장관 교체를 마치 야당에 대한 굴복인 양 받아들였다. 급기야 경찰 수장이 “주말 저녁이면 저도 음주할 수 있다. 그것까지 밝혀드려야 하나?”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지경이 됐다.
세월호 사건으로 침몰한 박근혜 정부 트라우마를 의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159명이 축제 구경을 나왔다가 길바닥에서 생명을 잃었는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은 이해하기 어렵다. 직무상 중대한 법률 위반 행위가 없는데 장관 탄핵 소추를 강행한 야당이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경찰과 소방 배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는 초기 발언은 안전을 책임지는 장관이 안전에 관한 한 문외한이었다는 자인이다. 그런데도 중대재난 수습의 지휘를 계속 맡기겠다는 건 안전에 대한 각성을 한 것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탄핵심판 국면으로 넘어가면서 이제는 출구 찾기도 어려운 형국이다. 이태원 희생자 유가족은 추모공간마저 내주고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재난대응 시스템을 개선할 동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신호로 들려 안타깝다.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정부를 향한 정치적 압력은 차오를 수밖에 없다. 그게 튀르키예 지진, 카트리나 사태의 교훈이다. 누르기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걸 이 정부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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