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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됐든 사과"가 말해주는 것들

입력
2024.11.08 16:00
수정
2024.11.08 16:5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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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하는 대통령 될 것' 다짐과 거리 멀어
김건희 여사에 대한 'V0' 심증만 굳혀줘
'국민 눈높이' 강조한 한동훈은 어디 갔나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하는 사과만큼이나 상대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없다. 개인 간에도 이럴진대 하물며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선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7일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였으나, 무엇을 잘못해서 사과하는지를 묻는 기자에게 "잘못한 게 있으면 딱 집어 주면 딱 그 팩트에 대해서 사과를 드리겠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의 '어찌 됐든' 사과에 국민이 박절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부정 평가와 별개로 회견이 알려준 뜻밖의 소득도 있었다. 윤 대통령은 4·10 총선 참패 후 참모들에게 "이제는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정치의 최정점에 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나 싶었지만, 야당 및 국민과 소통하며 변화하겠다는 의지로 이해했다. 그러나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기에는 한참 먼 것 같다. 정치란 기본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인데, 사과한다면서 되레 국민 마음을 상하게 하진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입당 당시 하루 3,000개 이상의 문자가 왔다며 "아침에 일어나보면 5시, 6시인데 (아내가) 안 자고 제 휴대폰 놓고 답을 하고 있어서 '미쳤냐. 잠 안 자고 뭐 하냐'고 했다"고 말했다. 김 여사가 대선 이후에도 선거 브로커 명태균씨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해선 "아내 휴대폰을 보자고 할 수 없어 그냥 물어봤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달리 김 여사는 남편 휴대폰을 스스럼없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얘기다. 김 여사는 명씨와 주고받은 문자로 공천 개입 의혹을, 명품백을 건넨 목사에게 "남북문제에 내가 나설 생각"이라고 말해 국정 관여 의혹을 자초하지 않았나. '공동 대통령' 'V0' 등 김 여사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심증만 굳혀 주었다.

대통령과 여당이 반대하는 특검은 헌법에 반하는 발상이라는 윤 대통령의 인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소환시켰다. 2016년 11월 박 전 대통령과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야당에 특검 추천권을 부여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의혹 특검법'을 수용했다. 여론에 떠밀린 결정이었지만, 대통령이 여야 합의에 따른 국회 결정에 "삼권분립 체계에 맞지 않는다"며 토를 달지 않았다. 보수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 염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정농단 특검의 수사팀장에 발탁된 후 대중적 인지도를 쌓아 대통령까지 오른 윤 대통령이 특검을 부인하는 듯한 주장을 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배포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대표는 "대통령께서 어제 현 상황에 대해 사과하고 인적 쇄신, 김 여사 활동 중단, 특별감찰관의 조건 없는 임명에 대해 약속하셨다"고 평가하며 속도감 있는 실천을 강조했다. 며칠 전 대통령을 향해 '독단적 국정 운영'을 지적하며 전면 쇄신을 요구한 결기는 찾을 수 없었다. 지난달 윤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자신이 '김건희 라인'으로 지목한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이 회견 하루 전날 음주운전 징계 이후 복귀했는데 무슨 인적 쇄신을 약속했다는 말인가. 매번 말로만 '국민 눈높이'를 외칠 뿐이니, 국정기조 변화나 당정관계 재정립 등 민심에 부응하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8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17%로 2주 연속 최저치를 경신했다. 국정농단 의혹 관련 첫 대국민 사과 당시 박 전 대통령 지지율도 17%였고, 한 주 뒤 5%로 급락했다. 국민이 돌을 던지는 순간에는 이미 때를 놓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돌 던져도 맞고 가겠다"며 호기를 부릴 시기는 지났다.

김회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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