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타나, 실수해도 괜타나여. 차근차근 다시 하면 되는 거야."
올해로 세 살이 되는 조카 앞에서 잘하는 고모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최근 공룡 수집에 취미를 붙인 아이와 마주 앉아 자석 블록으로 쥐라기 공원을 만들기로 했다. 아이가 하는 걸 소파에 앉아 볼 때는 간단한 줄 알았는데, 내 손으로 조립해보니 이게 만만치 않았다. 끙끙거리며 스테고사우루스와 2단 사다리를 갖춘 타워를 만들어냈다. 그 뒤 아이가 조립해놓은 나무들로 울창한 숲을 조성하다가 왼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공들여 쌓은 타워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내가 얼굴 가득 낭패감을 드러냈던가 보다. 무너지는 타워를 보며 짧게 아! 소리를 지르던 아이가 그 작은 두 손으로 내 왼손을 감싸 쥐었다. 그러고는 만 시름이 녹아내릴 듯 다정한 눈길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곰므, 슬퍼하지 마여. 괜타나, 실수해도 괜타나여. 차근차근 다시 하면 되는 거야."
서툰 발음으로 한 마디 한 마디 이어가는 아이를 보며 나는 일순 얼어붙었다. 아이가 어디서 이 말을 배웠을까. 어린 조카가 이토록 따스한 표정으로 타인을 위로하고 낙관할 줄 아는 게 기특하기보다 가슴 저렸다. 세상에 나온 지 아직 1,000일도 되지 않은 아이 역시 그간 숱하게 애쓰고 실패하는 경험을 반복하며 낭패감을 느꼈을 터이다. 그럴 때마다 곁에서 지켜봐 준 누군가로부터 격려받으며 다시 해볼 용기를 얻고 나아갔으리라. 뜻밖의 응원에 코끝이 시큰거리면서도 나는 철없게 힘이 솟았다. 조카와 함께 타워도 다시 쌓고, 공룡도 조립하고, 울창한 숲도 일구면서 쥐라기 공원을 만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거실 저편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절대로 괜찮지 않은 현실들. 훌훌 털어내고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고통의 현장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인명 구조작업의 종료를 공식 선언한 튀르키예·시리아 국경 부근에 규모 6.0 이상의 유발 지진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위태롭게 버티던 건물들이 이번 여진으로 주저앉는 바람에, 그 안에서 추위를 피하던 수만 명의 이재민이 또 매몰됐을 거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폐허가 된 건물더미 사이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노인이 울고 있었다. "가족도 집도 다 잃었어요. 그래도 신이 보호해주신 덕에 이렇게 살아남았으니 어떻게든…" 깊게 팬 주름 사이로 차오르는 눈물을 보다가 가슴을 쳤다. 골든타임을 넘겨 구조된 아기를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수십 명에 이른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나는 안도감보다 먼저 땅속에 묻혀 죽음을 맞이했을 아기의 부모와 형제들을 생각했다. 영문도 모른 채 자기 삶의 첫 울타리가 되어줄 가족들을 죄다 잃은 아기의 미래는 얼마나 외롭고 고단할까. 울고 있는 노인은 다시 힘을 내어 한 발 두 발 내딛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수고와 절망, 두려움을 감내해야 할까. 무자비한 현실에 내던져진 그들에게 우리는 얼마나 오래 든든한 지지와 온정을 내어줄 수 있을까.
다만 나의 조카는 블록을 쥔 채 심란하게 앉아 있는 고모가 못내 가여웠던가 보다. 내 목을 끌어안던 아이가 장난감 피아노 앞으로 갔다. "곰므, 노래해 주께여. 하이팅." 조카는 건반을 두드리며 가사까지 바꿔 노래를 부르고, 나는 주책바가지처럼 엉엉 울고 말았다. "바람 부여도 괜타나여 괜타나여. 씩씩하니까, 우리 곰므는 괜타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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