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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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것까지 물어봅니까?”
지난해 8월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준비단 총경급 간부가 툴툴대며 한 말이다. 후배와 단출하게 인사 검증팀을 꾸려 윤 후보자가 국회에 제출한 본인과 직계가족 재산ㆍ병역 등의 자료를 들여다볼 때였다. 검증팀이란 이름과 달리 일하는 방식은 막노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료를 수차례 정독하며 사소한 팩트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자녀가 집에서 버스로 30분 걸리는 고등학교로 간 이유는 뭔지, 왜 가구주를 배우자로 바꿨는지 등을 꼬치꼬치 캐물으니 경찰 입장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평소 ‘이건 확인 안 해도 뻔해’ 예단하고 수사하시느냐”고 응수했던 기억이 난다.
사나흘 경찰청장 삶을 추적하고도 제대로 된 기사 하나 쓰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린 건, 정순신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낙마 사태를 보면서다. 정 변호사 아들 A씨의 학교폭력 문제를 걸러내지 못했다는 부실 검증 비판에 대통령실은 ‘자녀 일이라 몰랐다’는 취지로 잡아뗐다. 후보자와 직계가족의 학적 검증은 기본 중 기본이다. 특히 A씨가 고3이 되는 2019년에, 그것도 ‘전국 상위 1%’로 꼽히는 명문 자사고에서 일반 학교로 전학을 갔다면 이유를 확인하는 게 당연했다. 일개 기자도 하는 일을 대통령실과 사정당국이 하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학폭'을 알고도 모르는 척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전국 경찰 13만 명을 대표하는 윤희근 경찰청장의 소신 없는 행보다. 지난달 정 변호사가 국수본부장에 지원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경찰 내부는 “모욕적”이라며 들끓었다. 정 변호사가 20년 이상 검찰에 몸담은 검사 출신이라서가 아니다. 차관급 경찰청장 바로 아래인 국수본부장은 굳이 따지면 차관보급이다. 하지만 전국 모든 수사를 총괄하는 터라 영향력은 그 이상이다. 그런 자리에 대통령 측근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특출한 수사 경력을 갖고 있다고 보기 힘든 인사를 무리하게 앉히려는 시도가 경찰 자존심을 건드렸다. “현 정권이 얼마나 경찰을 핫바지로 생각하면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느냐”는 격앙된 반응이 나왔던 이유다. 하지만 윤 청장은 내부 반발에도 그저 ‘윤심(尹心)’을 따랐다.
정부 출범 후 ‘벼락 출세’로 수장에 오른 그는 늘 쉬운 길을 택했다. 경찰국 신설에 반대해 총경회의에 참석한 50여 명 중 상당수는 각 시도경찰청 112 상황실이나 경찰교육기관 등 한직으로 좌천됐다. 코드 치안의 백미는 윤 대통령이 ‘건폭’으로 규정한 노조의 건설현장 불법행위 수사다. 윤 청장은 ‘특별승진 50명’ 포상을 내걸었다. 올해 특진자 510명 중 10%에 이르는 규모다. 전세사기(30명), 보이스피싱(25명)보다 많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학부 교수는 “30년 전 노태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비꼬았다. 취임 초 “30년 경찰에 몸담은 분이라 ‘선’은 넘지 않을 것”이라던 경찰들의 낙관이 무색해졌다.
“능력 없는 경찰도, 수사를 주무르듯 하는 검사도 아닌, 정치적 논리 없이 국민만 바라보는 인물이어야 한다.” 한 일선 경찰관은 경찰 내부망에 바람직한 국수본부장 상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어째, 용산만 바라보는 윤 청장을 겨냥한 말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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