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송년회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책방 행사가 없었다. 물론 매주 독서 모임과 글쓰기 수업이 있지만, 행사가 없는 책방의 일상은 꽤나 한적했다. 덕분에 편안한 몸으로 햇살을 등지고 앉아 책을 읽다 깜빡깜빡 졸면서 지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올해는 이런저런 일을 벌이지 말아야지. 사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 하룻밤 자고 나면 거뜬했던 것이 이젠 회복이 늦다. 무엇보다 한바탕 일을 하고 난 후 마셨던 막걸리나 맥주 같은 술을 통 마시지 못한다. 술을 좀 좋아했던 나로서는 술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꽤 우울하다. 기껏해야 맥주 한 캔, 와인 한 잔 정도지만 정원 일이나 행사를 마친 후 술 한잔하면서 피로를 풀곤 했다. 나름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공기 좋은 데서 사는데 나이는 어쩔 수 없나 생각하니 정말이지 쓸쓸해졌다.
그런데 책방 대상 공모사업 공지가 뜨자 나도 모르게 컴퓨터를 켜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걸 하면 재밌겠다, 저걸 해도 좋겠다는 생각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뛰었다. 정말 이상한 병이다.
물론 공모사업이니 떨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떨어지면 그냥 하면 된다. 사실 공모사업은 정산 및 서류 작성 등 지난한 과정이 있다. 마무리 작업을 할 때마다 다시는 공모사업을 하지 않겠다 생각한다. 그래도 하는 이유는 지원금으로 강사비를 충당함으로써 비교적 맘 놓고 행사를 진행할 수 있고, 보다 다양한 기획으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책방에도 홍보 등 약간의 도움이 되고.
젊은 시절에는 일하는 것이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일하면 많든 적든 돈이 들어왔으니까. 때려치울 궁리를 하면서 꾸역꾸역 밥벌이하다 어느 순간 일이 재밌어졌다. 아마도 조금은 주체적으로 일하면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서는 그만두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생각했다.
40대 중반, 매달 통장에 찍히는 월급을 포기했을 때 나는 읽고 쓰는 일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밥벌이할 때의 습관으로 나는 무작정 사무실을 하나 얻어 책을 만들고 있었다. 돈이 되든 안 되든 내가 내고 싶은 책을 내면서. 그런데 책방이란 공간이 생긴 후에는 일이 날개를 달았다. 하고 싶었던 일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이 일 저 일이 튀어나왔다.
월급쟁이로 일할 때와 달리 사업체라고 꾸리다 보니 일이 곧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이 곧 돈이 된다면 모든 자영업자들이 망할 일이 없을 것이다.) 특히 책방의 일이란 아주 묘해서 하는 일에 비해 수익이 나지 않는다. 책방은 단순히 책만 파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기업가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그의 책 '왜 일하는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하는 것은 우리의 내면을 단단하게 하고, 마음을 갈고닦으며,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한 행위'라고.
그처럼 거창하지 않지만 나는 아직 일 앞에서 설렌다. 독서 모임도 매번 다른 책으로 만나고, 작가 초대도 매번 다른 작가이고, 콘서트도 매번 다른 레퍼토리이니 당연하다. 언젠가는 모노드라마, 마술 같은 것도 꼭 해보고 싶다. 책방이란 작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맘껏 해보자 맘먹는다. 한 달 매출이 동네 대형카페 반나절 매출도 안 되지만 내 책방인데 뭔들 못 하랴.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을 때 하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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