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인터뷰]
숨진 태국인 근로자 숙소 둘러보고 충격
속헹 사망 이후에도 열악한 환경 그대로
고용주들 의식 개선도 서둘러야 할 때
"코를 찌르는 돼지 분뇨 냄새와 유독가스에 숨을 못 쉬었습니다. 1분도 못 버티고 나온 공간에 사람이 살았다니."
8일 경기 포천에서 만난 김달성(68·목사)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지난 4일 태국인 분추(67)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그가 일하던 돼지 농장으로 곧장 달려 갔다. 분추가 생활한 숙소를 둘러본 김 대표는 "짐승 우리만도 못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2013년 관광비자로 입국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10년간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고된 노동을 하던 분추가 숨지자, 농장주는 시신을 유기하려다 경찰에 검거돼 구속됐다. 경찰 등 관계기관은 그의 사인에 열악한 환경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수사 중이다.
"숙소서 다섯 발자국 옆에 돼지우리가"
김 대표가 목격한 분추의 숙소는 충격 그 자체였다. 90여 마리의 어미를 비롯해 1,000여 마리 돼지를 키우는 돈사 중 가장 낡은 돈사 건물에 붙어 있는 허름한 샌드위치 패널 구조의 가건물 내부 가로 2m, 세로 3m의 비좁은 방이 '코리안 드림'을 꿈꾼 분추의 생활 공간이었다. 김 대표는 "성인 한 명이 눕기도 벅찬 방 내부는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고 벽에는 시커먼 곰팡이가 잔뜩 낀 상태였다"며 "냉골처럼 찬 방 한편의 작은 난방 기구는 혹한의 추위를 이겨내기에 어림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숙소에서 다섯 발자국 떨어진 곳에 돼지 수십 마리가 사육되고 있었다"며 "아무리 불법체류자 신분이라도 이런 곳에서 장기간 생활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김 대표는 최근 분추의 부인과 연락이 닿았다. 12일쯤 입국 예정인 분추의 부인과 장례와 사망 보상 문제 협의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분추는 10년간 고향 태국에 한 번도 가지 못한 채, 돼지농장에서 일하고 받은 수입을 거의 전액 가족들에게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속헹의 사망 이후에도 불법 가건물 숙소 여전
2018년 2월부터 이주노동자센터를 꾸려 활동 중인 김 대표는 5년간 2,00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을 만나 근로조건을 확인하고 고용노동부에 개선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2020년 12월 포천의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의 사망 때도 김 대표는 이주노동자 노동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김 대표는 "속헹의 사건 이후 정부와 지자체가 대책을 발표해 일부 개선은 되고 있지만 아직도 이주노동자의 70%가량은 움막 같은 불법 가건물에서 살고 있다"면서 "정부가 2021년 1월부터 컨테이너와 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쓰지 못하도록 금지했으나, 녹슬고 낡은 가건물을 여전히 숙소로 제공하는 곳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겨울 김 대표가 둘러본 경기 북부 이주노동자 숙소 중에는 오염 우려가 큰 지하수를 생활수로 쓰거나, 안전장치도 없이 설치된 액화석유가스(LPG)통을 연결해 사용하는 곳이 확인됐다.
현행 '고용허가제'를 개정하지 않는 이상 속헹이나 분추 같은 이주노동자들의 비극을 끊을 수 없다는 게 김 대표 판단이다. 그는 "현행법상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주의 승인이나 동의 없이는 직장을 옮기거나 고용연장이 불허돼 고용주 지시를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다"며 "이주노동자를 향한 폭행과 폭언 등의 인권침해 행태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사업주와 근로자를 대등한 관계로 정립하는 이주노동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용주들의 의식전환 필요성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이주노동자를 더 이상 착취의 대상인 ‘인력’으로 볼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인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며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기본권을 대한민국 국민과 동등한 수준으로 인식해야 진정한 의식의 선진화를 이뤄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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