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선생은 강진에서의 유배 시절 많은 제자를 키웠다. 그 기간이 18년이었고 키운 제자도 수십 명이었지만 문하는 흩어져 사라졌다. 조선 최고의 학자인 다산의 문하가 남아 있지 않다니 의아할 따름이다. 다산 연구가인 한양대 정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다산은 무척 깐깐한 스승이어서 웬만한 제자들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벼슬길을 터주지 않는다고 창을 들고 방으로 뛰어들어와 욕을 하며 등을 돌린 이도 있었다니 놀랍다. 하지만 열다섯에 다산을 만나 스승의 가르침을 평생 마음에 품고 행하며 산 제자가 있었다. 바로 황상이었다. 정 교수는 이 둘의 만남을 '삶을 바꾼 만남'으로 정의한다. 그들의 첫 만남 속으로 들어가 보자.
다산의 제자가 된 지 이레째 되던 날, 다산은 황상에게 문사 공부를 권했다. 황상은 머뭇머뭇하더니 부끄러운 빛으로 사양하며 말했다. "저에게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둔한 것이요, 둘째는 막힌 것이며, 셋째는 답답한 것입니다." 그러자 다산이 말했다. "배우는 사람에게는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는데, 너에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는 데 민첩하면 그 폐단이 소홀한 데 있다. 둘째, 글짓기에 날래면 그 폐단이 들뜨는 데 있지.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그 폐단은 거친 데 있다." 황상은 스승의 말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고 학문에 정진했다. 스승은 제자에게 평생 '부지런함'이라는 글자를 결코 잊지 말도록 당부했다. 황상은 스승의 가르침을 '삼근계'라 부르며 자신의 평생 신조로 삼았다.
다산은 제자 중 황상을 제일 아꼈다. 황상은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학문에 정진했으며 다산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를 살폈다. 황상이 결혼 후 신혼 재미에 빠져 공부를 게을리하자 다산은 이를 꾸짖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황상이 첫아들을 보자 다산은 자신의 손자를 얻은 듯 기뻐했다. 다산이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황상이 남양주로 스승을 찾아왔다. 다산은 혼미한 정신에도 붓을 들어 이렇게 썼다. '황자중에게 준다. 규장전운 한 권, 중국 붓 한 자루, 중국 먹 한 개, 부채 한 자루, 연배(담뱃대) 한 개, 여비 돈 두 냥.' 먼 길을 돌아갈 제자가 배를 곯을까 여비까지 챙겨주는 스승의 마음에 눈물이 맺힌다.
나에게도 삶을 바꾼 만남이 있다. 내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절, 한 줄기 빛을 비춰준 스승 구본형이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란 베스트셀러 이후 변화경영전문가로 활동하며 100명이 넘는 제자를 키웠다. 나는 직장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의 책을 찾아 읽으며 등불로 삼았고, 회사를 잠시 쉬는 동안에는 그의 제자가 되어 함께 공부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기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벚꽃이 피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된다. 그는 떠났지만 그는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스승이라면 어떤 결정을 할까'를 생각한다. 그 기준 덕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었다. 검지의 끝마디 반을 가리키며 '사람은 아주 조금만 먹고도 살 수 있다'고 알려준 덕분에 조직을 나와 1인 기업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의 묘미를 알게 된 후 다가오는 운명과 춤출 여유가 생겼다. 스승은 항상 '스승보다 더 훌륭한 제자가 되어 스승을 빛내라'라고 당부했다. 아직 그 경지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 여정에 있다고 믿는다. 다산이 황상에게, 스승 구본형이 나에게 했듯이, 나 역시 누군가에게 삶을 바꾼 만남이 되고 싶다. 스승이 더욱 그리운 봄날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