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논란이 더욱 격해지고 있다. 국회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간호사 당사자의 목소리를 좀 더 밀착해서 듣는 게 동료 시민의 연대 방식이라고 생각한 나는 김수련의 '밑바닥에서: 간호사가 들여다본 것들'을 읽기 시작했다. 읽는 내내 거의 모든 문장에서 숨을 고르며 통증으로 갈라지는 마음을 가라앉혀야 할 정도로, 그는 피 토하듯 이 책을 썼다.
간호사가 하는 일은 측은지심과 그에 따른 온기 있는 친절이 기본값으로 기대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가 마주한 현장은 일할수록 삶을 '밑바닥까지' 내동댕이치는 곳이다. 측은지심을 갖고 공감하자고 스스로 다그치는 일이 자기착취가 될 뿐인 곳이다. 화장실 갈 틈도 없어 팬티에 소변을 지릴 정도로 일이 몰아친다. 생리혈이 새서 바지까지 젖어도 생리대를 갈러 바로 달려가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의연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우리는 안타깝게도 기계가 아니다. 병원은 그걸 바라는 것 같지만, 공교롭게도 우리는 누구나처럼 섬세한 감정을 가진 인간이다. 그걸 가진 사람이 존엄과 공감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투쟁해야 하는 장소가 병원이다."
간호사의 자리에 돌봄노동자나 돌봄자를 넣고, 병원의 자리에 요양원이나 가정 등 다른 돌봄 현장을 넣어도 이 문장의 뜻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측은지심과 친절, 변함없는 의연함을 당연하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쪽과 그로 인해 매일 자기분열 속에서 투쟁해야 하는 쪽이 만나고 연결되는 일은 그런데 정말 가능하지 않은 것일까. 그의 토로를 따라가다 보면 두 가지 길이 보인다. 하나는 간호사를 조금 더 충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병원 내 '일들' 사이의 위계를 없애는 것이다.
간호사는 현재 인력 누수가 가장 심한 직종 중 하나다. 2019년 기준으로 면허 등록 간호사 중에 의료기관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는 52%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간호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한다고 10년간 간호대 정원을 계속 증원해왔지만, 간호사들의 '조용한 퇴장'을 막지 못했다. 환자 대 간호사 비율 법제화, 신규 간호사 교육 제도 정립, 안전한 근무 환경 확보. 김수련이 제안하는 세 가지 기본 사항이다.
그런데 안전한 근무 환경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간호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간호사를 의사 '아래'가 아니라 의사와 '나란히' 일하는 사람으로 대하면 된다. 의사의 '지시 아래' 일한다는 건 의사 '아래'에서 일한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를 대하는 의사들은 짜증이 많고, 습관처럼 빈정거렸다. 우리가 듣는 것이 짓씹는 욕이나 반말일 때도 있었고, 그들과 통화를 하면 차라리 뺨을 맞고 싶다고 생각될 때가 많았다." 젠더 불평등과 차별을 내장하고 있는 이런 폭력적 관행이 기본값인 곳에서 어떻게 환자가 간호사의 측은지심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지금 노년돌봄과 간호간병통합이 중대한 사회적 의제인 시대에 살고 있다. 기꺼이 간호하고, 당연히 보람도 누리는 간호사가 우리를 돌봐주길 소망한다. 책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속 '최 선생' 같은 간호사 말이다. 함께 방문한 곳 어디나 살갑고 화기애애한 사랑방이 되게 만드는 간호사. 그에겐 '거기 가면 의사가 이런 것까지 꼼꼼히 봐줘, 간호사가 정말 살가워'라고 말하는 환자와 보호자가 중요하다. 이런 간호사와 그가 '쪽팔려 하지 않아도 되는' 동료 의사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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