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지나며 바싹 마른 공기가 코 안에서 서걱거렸다. 침을 모아 꿀컥 삼키는 것도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아 괜스레 미안했다. 해가 떠있는 동안 철저하게 금식하고 금욕하는 라마단 기간. 같은 종교를 가진 것도 아니고 여행자는 아이나 임산부처럼 금식에서 예외라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속을 비워내는 도시에서 혼자 우걱우걱 배를 채우는 것도 민망스러운 일이었다.
한없이 가라앉는 듯한 오후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도시를 둘러싼 공기가 분주해졌다. 기다렸다는 듯 가게 셔터를 내리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며 사람들이 어디론가 분주히 간다. 갑자기 밀려 나온 차들 때문에 막히는 길목도 생기고, 얼른 비키라며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들은 달려가는 마음만큼이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하루 다섯 번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 중에서도 일몰을 알리는 아잔이 울리는 시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던 이들이 감사기도를 드리며 첫 끼를 먹는다.
종일 굶은 빈속을 채우는 첫 번째 음식은 대추야자다. 달콤하다 못해 찐득찐득해진 단맛. 사막에서도 무럭무럭 자라 우두둑 과실까지 맺는 종려나무의 열매인데, 영양분이 풍부해 지친 기력을 순식간에 회복시키고 모자랐던 열량도 금세 보충해준다. 그래서 먼 길 온 손님에게는 필터 없이 원두를 끓여 만드는 중동식 커피와 함께 대추야자를 대접하는 사막지역 특유의 환대 문화도 있다.
배고픔을 겪어본 사람만큼 타인의 배고픔을 이해하는 이는 없다. 낮 시간의 금식을 겪은 이들은 푸짐하게 음식을 만들어 가난한 이웃과 나눈다. 바로 라마단 저녁마다 동네 공터나 사원 광장에서 열리는 만찬의 전통 '이프타르'다. 지나는 이에게도 불쑥 내밀어지는 음식과 낯선 이에게도 선뜻 내어주는 한 자리. 어쩌면 라마단의 핵심은 '배고픈 낮'이 아니라 '나누는 밤'일지도 모르겠다.
중동 전역에서 라마단 단식이 한창인 요즘, 며칠 후로 다가온 유대교의 최대 명절 '유월절'을 준비하는 유대인들도 분주하다. 현관에 양의 피를 발라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자식을 지켰음을 기리는 양고기, 이집트에서 서둘러 도망쳐 나온 것을 기억하는 날것 그대로의 쓴 야채가 유월절의 대표 메뉴다.
특히 발효하지 않은 빵만 먹는 유월절이 오기 전에 집안의 누룩을 다 없애야 하기에, 집 안 곳곳에 누룩이 묻은 것들을 내어버리고 불태우며 대청소를 한다. 누룩이 들어간 음식은 팔지도 먹지도 않으니 슈퍼마켓의 진열대도 죄다 천으로 가리고, 글로벌 프랜차이즈에서도 누룩이 안 들어간 퍽퍽한 빵으로 햄버거를 만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렇게 예루살렘에서 같은 성지를 나누어 쓰는 양대 종교의 명절이 겹쳤는데, 즐거운 경사라고 축하하기에는 이스라엘을 둘러싼 정세가 늘 심상치 않다. 이스라엘 건국일과 라마단 시작이 겹쳤던 2018년에는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이 아랍권 전체를 자극하면서 수십 명이 죽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었고, 2년 전에는 라마단을 맞아 성전산을 방문하려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스라엘이 막으면서 대규모 충돌이 일어나 100명도 넘게 사람이 죽었다. 올해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경한 우파정권 집권으로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팔레스타인과의 긴장에다, '사법부 무력화' 입법에 저항하는 이스라엘 국민과의 내부갈등까지 일촉즉발. 이슬람과 유대교, 기독교의 공통 성지인 예루살렘이 평화의 상징이 될 날은 아직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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