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그만뒀던 수영을 3년 만에 다시 시작했다. 오랜만에 수영장에 간 첫날, 물속에 들어가 몸을 띄우고 천천히 발을 차며 앞으로 나아갔다. 온몸에 물의 흐름이 느껴졌다. 몸 구석구석 물의 흐름이 느껴질 때마다 몸속 저 깊은 곳까지 간지러웠다. 매일 수영할 때는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물의 흐름이 몸 곳곳의 감각을 일깨웠다.
다시 돌 때는 처음보다 빨리 발차기를 하고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갔다. 첫날이니 워밍업 한다 생각하고 그렇게 천천히 50m 레인 10바퀴를 돌았다. 나의 수영 목표 거리는 항상 1㎞ 이상인데 20여 년 전,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가 수영을 권하면서 매일 수영 1㎞를 처방했기 때문이다.
이튿날, 다시 물속에 들어갔으나 첫날의 느낌은 이내 사라졌다. 그새 다시 물의 감각에 익숙해진 것이다. 숨차게 발을 차고, 물 밖으로 나올 때는 땀과 물이 섞인 벌건 얼굴로 나왔다. 운동을 제대로 했다 싶어 뿌듯했다.
그러다 며칠 후 김주환 교수의 '내면 소통'을 읽다 수영이 움직임 명상의 하나라는 말에 눈이 확 뜨였다. '물속에 들어가면 평소 느끼지 못하는 새로운 감각 신호들이 엄청 밀려들어온다'는 것은 얼마 전 느낀 바로 그것들이었다. 물속에 나를 맡기고 물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 김 교수는 몸의 감각을 살리는 것이 마음의 감각을 살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물을 잡아서 헤쳐나가는, 즉 물과 싸우는 '운동'과는 다른, 물에 나를 맡기는 '명상' 수영을 권했다.
이튿날 수영장에 가서 명상 수영을 시도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듯 몸을 물에 맡기고 팔과 다리를 부드럽게 저었다. 몸통을 좌우로 돌리면서 나아가되 몸에 느껴지는 물의 감각과 호흡에 최대한 집중했다. 조금 빨리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지나치게 숨이 차지 않도록 주의했다.
수영을 오랫동안 했으므로 부드럽게 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으나 몸통을 좌우로 돌릴 때마다 한쪽 면 전체가 수영장 바닥을 향하도록 하는 것은 어려웠다. 왼쪽이 더 잘 돌아가지 않았다. 신경 쓰면서 한다 했는데 어느 순간 예전 습관대로 몸통이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누군가 옆에서 봐줬으면 싶을 정도였다. 그러면 다시 몸통을 더욱 회전시켜 몸에 닿는 물의 파동을 느끼려고 했다.
10바퀴를 그렇게 돌자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이튿날부터 조금 속도를 더 냈다. 다만 숨이 헉헉거릴 정도로 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내 몸에 집중했다. 가끔 나를 추월해서 앞서가는 이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내가 계속 도는 동안 중간중간 쉬었다. 명상 수영을 하기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실 명상 수영을 한다고 하지만 아주 잠깐 내 몸과 내 숨소리에 집중할 뿐 머릿속은 잡생각으로 가득하다. 아직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몸을 바꿔 습관을 만들고 내 호흡과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 근력이 더 단단해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덜 흔들리며 사는 날이 올 테고.
아침 일찍 명상 수영을 하면서 당장 일어난 변화는 조바심내면서 빨리 해치우려는 마음이 덜해졌다는 것이다. 마치 흙냄새를 맡으며 들꽃과 눈 마주치고 돌아온 후 같다고나 할까. 내 숨소리를 들으며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그러고 보니 명상 수영은 물속에서의 산책과 같다. 수영이 아픈 몸도 살리고 마음도 살리는 중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