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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료 누진제 판결 향한 불편한 시선

입력
2023.05.01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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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게티이미지뱅크

ⓒ연합뉴스, 게티이미지뱅크

오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던 전기요금 누진제 관련 판결이 최근 대법원에서 선고되었다. 누진제로 인해 가정용 전기요금이 산업용 전기요금에 비하여 지나치게 높아 전기요금이 부당하게 산정되었다는 이유로, 과도하게 지급된 전기요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것을 청구하는 소송을 소비자들이 여럿 제기한 것이다. 그사이 한 지방법원에서만 원고인 소비자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다른 법원들에서는 모두 소비자들이 패소하였다.

전기요금 누진제가 사회적으로 문제 된 때는 기록적 폭염이 발생했던 2016년 여름이었다. 폭염을 피하기 위해서 에어컨을 많이 사용한 결과, 많은 가정에서 누진제로 인한 전기요금 폭탄을 맞았다. 그 후 가정에서는 전기요금이 무서워 에어컨을 사용하지 못한 반면,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는 상점들은 문을 열어 놓은 채 냉방을 하면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일반 소비자들의 누진제 소송은 이러한 상황을 기반으로 이뤄졌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이 소송이 제기된 이후에 많은 개선이 합리적 범주 내로 이루어졌다. 즉 2004년 도입되었던 '6단계·11.7배수'의 누진 구조를 2018년에 '3단계·3배수'로 조정한 것이다. 또 지난 정권의 에너지 정책 실패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치며 심화한 에너지 위기로 전기판매사업자인 한국전력의 부채는 천문학적 수치로 늘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몇 년 전의 전기요금 누진제가 부당하다고 볼 여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대법원에서는 한전에 부담 되는 판결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아무리 이러한 정책적 판단이 개입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적 법리를 선언하는 대법원에서는 근본적 법리에 어긋나는 판결을 해서는 안 된다. 당해 소송은 과거의 전기요금 누진제가 형평에 부합하지 않게 결정되었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이 억울함을 느껴 제기한 소송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소비자들의 억울함을 들어주지도 않고 심지어 법리에도 정면으로 반하는 판결을 내놨다.

이번 판결은 전기요금이 정당하게 산정되었는지를 약관법에 기초해 판단하고 있다. 필자는 하급심 단계에서부터 약관법은 기본적으로 부수적 사항에 대한 내용 통제를 정당화하는 법률이지 전기요금의 산정과 같은 계약의 주된 급부에 관한 사항은 약관법의 통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여 왔다. 통상적으로 대가는 당사자들이 정하고, 대가 산정이 정당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심사할 잣대가 없기 때문에 약관법 원리에 기한 내용 통제는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 전기사업법은 전기요금을 정할 수 있는 권리를 전기사업자에게 일방적으로 부여하고 있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정해진 전기요금이 형평에 부합하게 산정되었는지는 법원이 심사할 수 있다.

전기사업법에서 정하고 있는 전기요금의 결정표지 중에서 전기사용자 사이에 '부담의 형평'이 유지되도록 전기요금을 산정해야 한다고 규정한 부분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누진제의 상위 단계에 해당하는 전력을 사용하고 있는 소비자들은 산업용 전기사용자와의 관계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요소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필자 생각으로는 이러한 차별적 취급은 정당한 재량권 행사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서 형평에 반하는 재량권 행사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는 이런 규정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불공정성을 판단해 버렸다.


이병준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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