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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의장국 미국, 무역질서 변곡점

입력
2023.05.24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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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AP 뉴시스

2009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AP 뉴시스

필자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리고 있는 APEC 제2차 고위관리회의(SOM2) 참가 중에 이 칼럼을 쓰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과 경제안보의 부상으로 다자주의 경제질서 회복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상황에서도 APEC 각국의 협력은 진행 중이다. 다만 기대감이 낮아서일까, 회의에 임하는 각국 대표단의 분위기는 차분하기만 하다.

올해 APEC 의장국은 미국이다. 미국으로서는 11월 APEC 정상회의에서 국제 경제협력을 위해 미국이 실질적인 공헌을 하고 있음을 선전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지금 상황은 2009년 APEC과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있다.

2009년 당시 미국 정부는 리먼 브라더스 파산과 이어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양자 및 다자 간 자유무역협정 논의에 일절 임하지 않고 있었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시장의 위기는 중산층 붕괴로 이어졌다. 2008년과 2009년에만 미국 내 일자리 860만 개가 사라졌다. 당연히 2009년 새롭게 출범한 오바마 정부의 초점은 국내 경제 회복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조는 2009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변화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회의에 참석하기 직전 아시아 순방의 첫 목적지인 일본에 들러 연설을 하는데, 놀랍게도 이 자리에서 미국이 "21세기 무역 협정에 걸맞은, 보다 많은 회원국들을 포함시키는 높은 수준의 지역 협정을 만들고자 노력할 것"을 공언한다. 바로 환태평양 전략적 경제동반자 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의 확대 계획이다.

이를 2023년 현재와 비교해 보자. 바이든 대통령도 미중 경쟁과 코로나19 사태로 국내 경제 회복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대선 전 바이든은 교육, 인프라, 생산시설에 대한 충분한 투자를 통해 일자리 창출, 임금 수준 제고, 지역사회 강화 등 중산층 재건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무역 협정에 나서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이 주최하는 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바이든 대통령도 성공적 회의 개최를 위해 어떤 형태로든 국제경제 협력 강화를 위한 미국의 노력을 부각하고자 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떠오르는 것은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협상 타결이다. 이미 공급망 필러에는 조기 합의에 가까워졌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가 다시 한번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동향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백악관에서 CPTPP 리브랜딩(rebranding)을 통한 재가입 논의를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한국을 필두로 세계 각국의 대미 투자가 큰 규모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바이든 대통령이 언급한 국내 투자 조건이 충족되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작년 12월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CPTPP 가입 의도를 재확인한 바 있지만, 실질적인 준비작업은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년 11월 미 대선이 예정된 가운데 바이든 정부가 국내 정치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자유무역협정 논의에 당장 나설 가능성이 작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넋 놓고 있기보다는 우리가 고민할 시간이 있을 때 선제적으로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된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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