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불후의 명곡'에서 후배 가수들이 부른 송창식 노래가 원곡에 얼마나 못 미치는지, 지난 칼럼에서 다소 비판적 글을 썼다. '불후의 명곡'에 출연할 정도면 가창력이 뛰어나다고 어느 정도 공인받은 셈이다. 그런 출연자들의 퍼포먼스가 대중적 소구력을 얻었을지 모르겠지만 원곡이 가진 예술적 높이에 이르는 데 다들 역부족이었다.
노래를 잘하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가. 음색 좋고 음감 정확하고 리듬을 잘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얼마나 고음이 높이 올라가는지, 그래서 표현할 수 있는 음역대가 얼마나 넓은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노래를 해석하는 내면의 힘이다. 가수는 노래의 최종 번역자이기 때문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노래 역시 아는 만큼 부를 수 있다.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는 만큼 말이다. 이 이해의 깊이에서 얻어지는 게 인문적 교양이다. 이는 삶의 성찰 혹은 독서 같은 간접 경험으로 축적된다. 좋은 가수는 그 훈련된 내면의 힘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 힘으로 텍스트를 재구성해 악보로는 채보할 수 없는 다채로운 무늬를 풀어놓는다.
"송창식 노래의 울림은 단순히 목청이 아니라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려 인문적 힘으로 파 내려간 그 정서적 동공(洞空)에서 나오는 것이다"라고 내가 썼던 이유다. 얕은 교양은 얕은 노래를, 깊은 교양은 깊은 노래를 만들어낸다. 화려한 쇼의 시간이 끝나고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면 깊이를 가진 것들만 살아남는다. 결국 이것들이 명곡이 된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원곡을 만들고 부른 사람은 김목경이지만 김광석이 다시 불러 히트시켰다. 이 노래의 주제는 '사별'이다. 아름답고 애틋하게 회상하는 과거에는 '영원한 이별'의 정한이 덧입혀져 있다. 이 정서적 공간을 깊게 혹은 넓게 만드는 것은 오로지 가수의 몫이다. 김광석은 사별의 감정을 자기의 세계로 끌고 내려가 '슬픔의 황홀경'을 만들어낸다. 김광석을 바이브레이션 섬세하고 목청 좋은 가수로만 여긴다면 오해다. 그의 가슴엔 허무와 염세라는 거대한 동굴이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안에 머무른 자의 절실함이 있다. 그가 부른 노래는 그 동굴을 거쳐 나온 소리들이다.
여기 신화화된 한 명의 가수 나훈아도 이 노래를 불렀다. 나훈아의 음색은 도드라지고 성량과 호흡은 탁월하다. 하지만 그가 노래하는 슬픔은 가슴 깊이 내려가지 못하고 목 끝에서 머문다. 그의 목소리에선 '사별'을 재해석한 자신만의 미학적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노래는 무난하다. 염세는 삶의 무의미성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인 낭만적 태도다. 김광석의 그 염세주의가 실연과 만나 섬광을 발한 문제작이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다. 또 한 명의 슈퍼스타 김준수가 이 곡에 도전한 적이 있다. 동방신기 멤버 중에서도 노래 잘한다고 꼽힌 그는 현재 뮤지컬계에서도 최고의 스타다. 하지만 그 역시 이 곡을 온전히 자신만의 색깔로 재구성할 만한 내면의 풍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결과 악보의 텍스트를 정확히 읽는 데서 그치고 말았다.
거듭 말하지만, 노래는 아는 만큼 부를 수 있다. 테크닉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통찰의 힘이다. 이는 들뜬 세속적 욕망 밖에서, 자신과의 고독한 대화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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