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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 자율준수 헛바퀴 안돌려면

입력
2023.06.12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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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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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기업들의 공정거래 자율준수제도 미도입과 소극적 운영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을 내놓았다. 대법원은 지난해 5월 D건설사의 입찰담합행위와 관련된 주주대표소송에서 감시·감독 의무를 게을리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대표이사와 함께 사내·외 이사들까지도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공정거래와 관련된 위법행위를 지시하거나 위법행위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공정거래 자율준수제도를 도입하지 않았거나 작동시키는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젠 직원들이 저지른 위법행위를 몰랐다거나 지시 또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위법행위 예방을 위해 제대로 된 공정거래 자율준수제도를 도입하고 잘 작동하도록 공정거래 준법경영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이유다.

공정거래 자율준수제도(Compliance Program, CP)란 공정거래 관련 법규를 준수하기 위해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도입·운영하는 준법감시시스템을 말한다. 임직원들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과 환류를 통해 기업 스스로 법 위반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이 제도의 목적이다.

아쉽게도 CP 도입과 평가 신청 기업 수가 최근 몇 년 사이에 확 줄었다. CP를 도입한 기업 수가 2011년부터 2014까지는 연평균 64개인 데 반해 2015년부터 2022년까지는 12개에 그쳤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CP 평가를 신청한 기업 수 역시 2011년부터 2014년까지는 연평균 27개였으나 2015년부터 2022년까지는 11개에 그쳤다. 기업들이 CP 도입과 평가에 시큰둥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CP 도입과 평가에 드는 비용에 비해 혜택이 턱없이 부족하고, CP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게 되면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올해 다행스럽게도 기업들의 CP 도입과 평가의 2가지 장애 요인이 해소되었다. 지난 5월 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돼 평가 우수기업에 대한 과징금 감경 등 인센티브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법적 근거가 없어 과징금 감경과 같은 인센티브 제공이 곤란했던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지난 2월에는 공정위가 CP부서·법무실 등 준법지원부서를 우선 조사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준법지원부서가 법 위반 또는 증거인멸 행위에 직접 관여하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준법지원부서의 적극적인 자율준수 활동의 걸림돌이 걷힌 것이다.

CP 도입과 운영의 걸림돌이 걷힌 만큼 이젠 기업들이 화답할 차례다. 제대로 된 CP를 도입하고 내실 있게 운영해야 한다. 형식적 운영으로 허울만 좋은 CP는 공정거래문화 확산에도 보탬이 안 된다. CP 운영으로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서는 그 내용이 구체적이고 규정대로 잘 작동돼야 한다. 법 위반행위를 발견할 경우 즉시 재발방지대책을 세우고 법 위반을 지시하거나 법 위반에 관여한 임직원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CP 운영의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최고경영자의 공정거래 자율준수 의지와 실천 노력이다. 최고경영자는 CP 운영 의지를 모든 임직원에게 효율적으로 전파하고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독려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동반돼야 최고경영자의 의지가 전사적으로 내재화돼 준법경영이 문화로 정착될 수 있다.


김형배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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