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힙하다'는 서울 성수동에서 식당, 카페 등에 경사로를 설치하고 접근성 확대 정책을 만드는 '모두의 1층'이란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실제 이 경사로를 휠체어 이용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설치한 점포 정보를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넣으면서 주변 가까운 장애인화장실이 어디 있는지도 함께 실었다.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 외출하면 물을 못 마시고 밥을 굶기까지 하는, 휠체어를 타는 아이 얼굴이 아른거렸다.
휠체어를 타는 지인이 외부 행사에 갔다. 주최 측에서 이 지인이 온다는 걸 알고 휠체어 경사로는 마련했는데 장애인화장실을 알아보는 건 깜박했던 모양이다. 담당자는 달려나가 근처 다른 대형건물 장애인화장실을 알아봐서 알려줬다. 지인은 단념하고 있다가 반색했다.
이 경우엔 장애인화장실을 운 좋게 찾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장애인화장실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아무리 큰 건물이라 해도 남녀 1개씩만 만들면 되고 공공건물이 아닌 민간 소유의 경우엔 설치 의무도 느슨해서다.
이걸 잘 알기에 나는 딸과 함께 가야 하는 곳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장애인화장실이 있는지부터 챙긴다. 휠체어로 들어갈 수 있는 매장이라고 하더라도 대형 건물에 입점한 곳이 아니라면 장애인화장실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근처의 대형 건물이나 공공시설을 검색하거나, 정 안 되면 지하철역 화장실을 이용하게 된다. 무의에서 서울 시내 휠체어로 갈 수 있는 매장 정보 조사 대상을 지하철역 90여 개 주변 지역으로 정한 이유다.
그래서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팀에서 연락 와서 시민과 함께 장애접근성 데이터를 모으고 싶다며 어떤 정보가 좋겠냐고 조언을 구했을 때 강력히 주장했다. "화장실 정보를 모으자"고. 자원봉사 시민들이 장애인화장실 사진을 찍어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형식이다.
사실 화장실 정보를 모은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다. 건물 앞에 경사로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매장 접근성 정보와는 달리, 장애인화장실 정보는 건물 안에 들어가서 직접 살펴야 해서 정보를 모으기가 까다로워서다. 더 큰 문제는 장애인화장실이 제대로 관리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장애인화장실에 청소도구를 쌓아 놨다든지, 잠가놓고 아예 운영하질 않는다든지, 시설이 고장 나도 방치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장애인화장실 설치를 할 때 휠체어가 그 안에서 제대로 회전을 할 수 있는지, 세면대나 변기는 잘 이용 가능한지 다양한 요소가 있는데, 기준에 맞추어 설치하지 않더라도 민간 건물 운영자의 경우는 큰 제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주도해 장애인화장실 정보를 시민이 모으는 캠페인 자체가 시민들에게도, 시에도 일종의 '학습 효과'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시민들이 만든 민간 장애인화장실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게 되는 건 덤이다.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화장실 관리 가이드라인을 정리해 넣었다. 서울시 전역을 다니면서 장애인화장실 수백 개를 보며 느꼈던 점을 쏟아놨다. '잠그지 말고 항상 운영해 달라. 항상 여는 게 어렵다면 관리자 연락처를 붙여 달라'는 기본적인 요청부터 시작하여 '대변기 옆 공간 중 넓은 공간은 휠체어 사용자들이 옮겨 앉을 때 사용하니 휴지통이나 청소도구가 놓여 있지 않게 해 달라'는 내용까지 세부적이다.
많은 휠체어 이용자가 괜찮은 장애인화장실을 발견하고는 '유레카'를 외치는 걸 보면 서글프다. 심리학자 매슬로의 5단계 욕구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오줌권', 즉 생리적 욕구는 행복이나 자아실현 이전 가장 기본적인 욕구다. 이런 측면에서 서울시의 '휠체어도 가는 화장실 찾기' 프로젝트는 단순히 화장실 정보를 모으는 것 이상이다. 시민들이 평소엔 가볼 일이 없는 장애인화장실을 가보고 '내가 휠체어를 탔다면 여기에서 휠체어를 돌릴 수 있을까'라고 상상하는 것, 빌딩 운영자들이 장애시민을 이용자와 고객으로 좀 더 선명히 인식하는 것. 모든 시민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존중하겠다는, 현장의 변화는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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