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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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겸손하게 만드는 선거의 힘을 새삼 느낀다. 지난달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확실히 변했다. 윤 대통령은 권위를 내려놓고 야당 의원들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예산안 시정연설문 초안에 들어간 문재인 정부 비판 내용은 손수 걸렀다. 공산 전체주의 척결 같은 이념색 짙은 발언도 자제하고 있다. 여당 또한 ‘이재명 구속, 문재인 책임론’에 당력을 집중하던 기조에서 벗어났다.
얼마 전 발표한 김포시의 서울 편입 추진은 그 적절성을 잘 따져봐야겠지만 그래도 반갑다. 간만에 집권 여당이 대형 정책 의제로 승부를 거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를 근절하겠다며 언론사들의 군기를 잡았던 당내 태스크포스도 보선 패배 이후엔 잠잠하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지도부와 친윤 핵심 인사의 2선 후퇴를 요구하며 당내 금기를 깨고 있다. 달라질 테니 내년 총선에서 표를 달라는 신호들이다. 그래도 고개를 갸웃하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대선 전 중도 합리 보수를 표방했다. 하지만 선거 뒤엔 강성 보수로 표변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일단 고개를 숙이지만 총선에서 이기고 나면 본색을 내보일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이겨서 과반 의석을 유지하는 것도 달콤한 상상은 아니다. 이재명 대표를 지킨다며 비명계 의원들에게 정신적 폭력을 가했던 강성 지지자들은 총선 승리 이후 더욱 무리한 행동을 할 개연성이 있다. 유권자들의 선택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내로남불로 지탄받은 사람들도 부활할 것이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악수 요청을 하는 윤 대통령에게 “이제 그만 두시라”고 말했다고 과시한 김용민 의원은 지금보다 더 큰 완장을 찰 것이고 강경파의 '대통령 탄핵' 노래는 절정을 향할 것이다. 검수완박, 임대차 3법 같은 법안들이 부작용에 대한 꼼꼼한 검토 없이 밀어붙여질 여건이 갖춰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막연한 양비론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양당은 외연 확장을 위한 중원 경쟁 대신 각 진영이 드리운 그늘 속을 파고드는 적대적 공생의 길을 걸었다. 중도 민심을 등한시해 온 양당 중 한 곳에 권력을 몰아주는 건 모험이란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정당의 예고된 질주를 막을 방법은 있다. 중도 합리적인 제3당이 국회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20석 이상을 얻고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각각 과반에 못 미치는 의석을 점하는 구도를 만들면 된다. 이때 3당은 캐스팅보터로서 원내 1당이 극단으로 달려가는 걸 저지할 수 있다. 다만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낮다. 3당이 태동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선거제 개편에 양당 지도부는 큰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양당이 스스로 발목에 안전장치를 채우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당내 주류에 비판적인 비주류에게 선거에서 중책을 맡기면 된다. 그러면 비주류가 선거 이후에도 당내 레드팀 역할을 하며 각 당의 강성 회귀 본능을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이준석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이, 민주당에선 이원욱 조응천 김종민 의원 등이 비주류다. 양당이 앞으로 쇄신 과정에서 비주류를 얼마나 중용할지 유권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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