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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나가야만 생기는 일말의 관심

입력
2023.11.13 17:38
수정
2023.11.13 18:0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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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8월 21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8월 21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뉴스1

"저희는 사람이 죽어야만 관심을 받는 것 같아요."

보건복지 담당 기자로 취재하면서 관련 종사자들에게 심심찮게 들었던 이야기다. 어떻게 하면 정책이 탄력받게 국민의 관심을 유도할까, 비극을 막기 위해 예방·관리를 잘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대화하면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말이었다. 아동·보육 정책은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터져야, 노인복지는 요양기관의 학대 잔혹상이 발견돼야, 국내 의료 문제는 '응급실 뺑뺑이'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야 뒤늦게 조명된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고민은 정책에 잘 반영되지 않는다. 그저 푸념일 뿐 대체로 사후약방문이다. 예방책이 필요하다고 외치면 '양치기 소년'으로 취급받기 쉽다. "지금 할 게 얼마나 많은데 한가하게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핀잔이 돌아올 뿐이다. 누군가 희생을 치러야 그제야 '관리가 잘 이뤄졌더라면' 식의 책임 전가로 흘러간다.

우리는 이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일상회복 이후 코로나19로 드러난 우리나라의 의료·복지 체계 문제점은 이미 지난 일이 돼 버렸다. 제2의 코로나가 오기 전 서둘러 허점을 메우자는 소리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만다. 가장 많은 희생을 낳은 요양병원·시설은 개선되고 있을까. 오히려 무관심 속에 잊히고 있다. 다음 팬데믹이 오고 나서야 또 '코로나 때 제대로 점검했어야 했다'는 탄식과 함께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는 복지에 대한 국민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약자 복지'란 말이 나왔듯 복지는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시혜성 제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모든 국민이 조금이라도 편안한 삶을 누리도록 끊임없이 개선할 제도로 보는 시각은 드물다. 그렇다 보니 국민의 관심사와 멀어지고 만다. 당장 주가와 내 집값을 살펴보는 게 급하다. 뜨악할 사건·사고가 쉴 새 없이 터지는 다이내믹 코리아에선 어지간해선 눈도 안 간다.

의대 정원 증원 문제가 지금이라도 뜨거운 감자가 된 게 다행인 건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필수·공공·지역의료 붕괴 위기로 대두된 의대 증원은 이미 2020년 8월 전공의들의 집단 진료 거부로 시끄러웠고, 올 초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3년 전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두었다면 2024학년 대입 때부터 적용됐을 것이고,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1년이라도 빨리 해소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세상이 된 건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다. 보건복지 관련 기사는 보통 3가지 반응이 온다. 너무 디테일하다, 어려워 한눈에 안 들어온다, 당장 벌어진 일이 아니다 등이다. 클릭 유입에 도움 되지 않으니 안철수·이준석 싸움이나 푸바오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뉴스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포털사이트 뉴스페이지에 보건복지 기사를 건 언론사는 본지를 비롯해 거의 없다. 이렇게 국민의 관심에서 한 발짝 또 멀어진다.

이런 글을 쓰는 건 더 많은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복지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우리는 한때 복지 혜택을 받고 성장한 아이였다. 그리고 언젠가 노인이 된다. 요양병원에 누운 채 죽음을 기다리는 미래를 꿈꾸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다 생을 마감하는 것, 복지에 대한 관심이 만들어 줄지 모른다.

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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