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장기 경기침체 국면의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 3월 19일 마이너스금리정책, 수익률곡선관리, ETF·J-REIT 매입 등 이례적 금융완화 조치들을 종료하고, 단기금리를 주요 정책수단으로 하는 정상적인 통화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17년 만의 금리인상으로 은행 예금금리가 상승하고 부동산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오랫동안 초저금리 환경에 익숙해진 일본 경제가 '금리 있는 세상'으로의 이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닛케이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에 비해 실물경제는 정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경제연구센터(JCER)가 추정한 1월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연율)은 -0.5%로 경제의 회복력은 미약하다. 내수 부진이 이어진 탓이다. 최근 일본 경제 활성화의 주요 동인이 슈퍼 엔저에 기반한 외국인 투자와 관광 증가, 일본 기업의 수출과 해외투자수익 확대 등 해외 수요 의존도는 높은 편이고, 임금 상승을 수반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지만 실질임금은 최근 22개월간 감소하고 있어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의 지속가능성이 의문이다. 일본 경제가 2006~07년 금리를 인상했다가 엔고와 해외경제 둔화로 다시 디플레이션에 빠졌던 전례의 재발을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물가·저성장의 디플레이션 극복 기대가 커지고 있다. 우선, 투자 확대이다. 일본 정부는 팬데믹과 미·중 갈등 등에 따른 공급망 재편 등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 변화에 맞춰 반도체 산업 부활, 디지털·녹색 경제전환 등을 위한 투자를 적극 촉진하고, 기업 실적 개선으로 기업의 투자 여력도 확대되었다. 두 번째는 임금 상승이다. 그동안 낮은 수준을 유지하였던 임금상승률이 최근에는 일본 정부와 경제단체의 적극적 노력으로 고무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고 있다. 2024년 춘투의 임금인상률이 5.28%로 33년 만에 5%를 상회했으며 기본급과 비정규직 임금 인상폭도 확대됐다.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 기대가 커지고 있다. 세 번째는 가계의 금융투자 증가이다. 신NISA, 상장기업 배당강화와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일본판 '밸류업 프로그램' 등에 따른 금융투자환경 개선 정책으로 개인의 증시 투자가 늘고 있다. 가계의 자산증가에 따른 소비증대 효과도 기대된다.
그러나 일본 경제의 디플레이션 탈피를 확신하기는 이른 것 같다. 일본 경제 장기 저성장의 가장 큰 원인이 저출산·고령화와 버블붕괴 이력효과로 인한 생산성·성장력 저하 등 일본 경제사회의 구조적인 요인에 기인한 바가 크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의 저출산·고령화 심화에 따른 인구감소,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실질임금 감소 등으로 총수요 위축이 우려되는 디플레이션 압력요인이 상존하고 있다. 한편 인구감소와 더불어 상대적으로 낮은 노동생산성(2022년, OECD 30위) 등으로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0%대에 머무르고 있고, 금리인상으로 GDP의 260%를 넘어선 일본의 국가부채도 경제 회복의 제약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골드만삭스 출신 애널리스트 데이비드 앳킨슨은 저서 '위험한 일본 경제의 미래'에서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진행되는 일본에는 미래가 없다'고 밝혔듯이, 일본 경제가 통화정책 전환을 통해 정상적인 경제성장 경로로의 진입을 시도하고 있으나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고 생산성 향상을 통한 경제체질 개선 없이 경제 회복력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저출산·고령화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 경제도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서둘러 대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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