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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정치, 위험수준이다

입력
2024.04.04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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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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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보다 선거 이후가 더 걱정이다. 지금까지 총선의 흐름은 정책과 공약 그리고 인물은 뒷전이고 상대방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를 조장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정치적 부족주의(Political Tribes)가 극에 달한 느낌이다. 정치적 부족주의란, 정치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유권자들이 지지정당을 따라 정파적으로 대립하는 양상이 일상화되면서 등장한 개념이다. 부족 정체성은 자기 집단에 대한 강력한 충성심을 형성하며 대립하는 집단을 ‘함께 갈 수 없는 적’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나아가 대립 집단에 대한 정서적 경멸, 혐오를 기반으로 강력한 부족화가 진행되고, 이 과정에서 다른 집단에 대한 폭력까지 일어나곤 한다.

혐오 표현이란 어떤 속성을 지닌 특정 집단에 대해 부정적 편견과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모욕ㆍ멸시ㆍ위협하거나 차별 및 폭력을 선전ㆍ선동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정치인의 혐오 표현이 급속히 확산되고 선거 과정 등에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례들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진영 정치의 기초가 되는 혐오의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 정치 진영은 편 가르기 형태의 집단주의 문화를 확산시켜 다원주의를 훼손시키고 민주주의의 기본인 토론과 타협을 어렵게 하고 있다. 지나친 집단주의를 부추겨 진실이 왜곡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반지성주의로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다.

특히 소셜미디어상에서의 혐오 표현은 심각한 수준이다. 4·10 총선이 가까워오며 정치 유튜브 채널에는 욕설ㆍ혐오ㆍ비방 발언이 난무하고 있다. 유튜브 진행자는 (예비)후보의 거친 발언을 제지하기보다 오히려 부추기는 모습도 보인다. 분노가 자양분인 양극화는 상대를 악마화하여 지지층의 공분을 불태운다. 소셜미디어는 진실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좋아요, 댓글, 공유, 클릭 수 등 모호한 지표인 참여도를 우선시한다. 주지하다시피 참여도가 높은 온라인상 혐오 발언은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진다. 유세장에서 지지자들의 분노에 불을 댕기기 위하여 혐오 표현으로 지지자를 자극한다. 혐오 정치는 소셜미디어와 만나 허위정보, 오정보, 알고리즘 등을 통하여 확증편향을 확대 재생산하는 방향으로 악화된다.

선거 과정이 이렇게 진행되면 결과에 대한 승복도 쉽지 않다. 혐오의 정치로 사회적 자본이 약화되고, 갈등의 폭은 더욱 커지고, 갈등 해결에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든다. 레비츠키와 지블랫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각국의 사례를 통하여 민주주의의 버팀목은 제도가 아니라 '관용과 절제'의 규범이라고 지적한다. 디지털시대 민주주의는 디지털 기술만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정당과 정치지도자들의 자정 노력과 디지털 시민의 성찰 및 깊은 책임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당은 막말, 혐오 발언자 등은 공천 과정에서 원천 배제될 수 있도록 당내 윤리 규범을 강화하여야 한다. 유권자들도 누가 혐오 정치로 이득을 취하려는지 감시하여야 한다. 시민사회가 나서 소용돌이치는 혐오의 파고를 넘어 양극화된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민간 차원에서 브레이버에인절스(Braver Angels)라는 단체를 만들어 양극화된 정치 지형 속 진영 간 가교 역할을 하려는 시도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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