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관계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페이스북 같은 SNS 친구를 줄이는 수준이 아니라 그동안 참여했던 커뮤니티 활동, 다양한 관계를 줄이거나 없애고 리셋하는 중이다.
가급적 티 안 나게 하려고 애쓰는 중인데 눈치 빠른 지인들은 갑작스러운 내 변신 이유를 캐묻는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고향 친구 모임에 빠지는 일도 많아졌는데, 늘 바쁘다고 엄살을 부려서 그런지 개의치 않는다.
큰 결심이 필요했던 '관계 다이어트'의 목적은 일부러 누군가를 끊어내거나 차단하려는 게 아니다. 삶의 방향과 지금 이 순간의 내 욕구에 맞춰 인간관계를 심플하게 정리하고 싶을 뿐이다.
자연스럽게 만남의 횟수가 줄고 아무 의미 없이 타성적으로 이뤄졌던 수많은 관계와 대상(사람들)을 차분히 되돌아보고 있다. 누가 좋다 나쁘다, 도움이 된다 안 된다가 기준이 아니다. 예전의 관계도 모두 어느 시점에서는 의미가 있었고 내게 필요한 일이었다.
단지 지금은 그 관계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순 나이를 코앞에 둔 내 인생 후반전을 잘 살아가는 데 필요할지 말지가 '관계 다이어트'의 기준이다.
새로 정한 기준을 단어로 표현한다면 '편안한 사람', '부담 없는 관계'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티키타카가 잘되고, 아무 말 없이 몇 시간 함께 있어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최상이다. 이 기준으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사람도 관계도 달리 보인다.
굳이 배려나 희생, 양보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되었던, 때로는 이기적이어도 되었던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닥치고' 최선을 다하느라 쉼 없이 일상에 쫓기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만나서 좋은 사람 위주로 만나고, 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 관계를 맺어가려고 한다. 오랜 생각 습관이 단숨에 바뀌지는 않지만 좋은 점이 많다. 시간을 여유 있게 쓸 수 있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편안한 사람'을 곁에 두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부담 없고, 복잡하게 머리 쓰며 대화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함께 있기만 해도 좋은 사람을 주변에서 찾는 일은 내 욕심일 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일을 할 때 누굴 만나는 것 말고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 시간을 점점 더 즐기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편안해지는 존재가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혼자 노래를 듣거나 산길을 자주 걷는다. 사람이 아니어도 꽃, 바람, 산, 하늘 같은 내 주변의 자연이 나와 함께 있어 준다는 건 큰 행복이다.
트롯 경연대회에서 정서주가 부른 '바람 바람아'를 들으면 그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는 위안과 평안을 얻는다. '세상에 지쳐 울고 싶은 날 나는 바람이 되어, 한없이 위로가 되는 당신 곁으로 가서, 참아온 눈물을 쏟고 싶구나.' 정서주가 읊조리듯 들려주는 노랫말에 길게 안도의 한숨을 쉬곤 한다.
정릉 북한산 산책로에 이해인 수녀님의 시 '산 위에서'를 써놓은 비목이 있다. 잠시 멈춰 천천히 시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수녀님이 옆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듯 마음이 편해진다.
'세상에 사는 동안 다는 말 못 할 일들을 / 사람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고 산다 / 꼭 침묵해야 할 때 / 침묵하기 어려워 산에 오르면 / 산은 침묵으로 튼튼해진 그의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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