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김근배 외 2명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
과학자라고 하면 외국 과학자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아이작 뉴턴부터 제임스 와트까지 과학 교과서를 채운 이들의 업적을 암기하며 자랐기 때문이다. 한국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면 '거인의 어깨' 역할을 해준 한국인 과학자들이 없었을 리 만무하건만, 막상 이름을 대려고 하면 말문이 막힌다. 기껏해야 우장춘과 이휘소의 이름 세 글자를 웅얼거릴 뿐.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은 이런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껴 탄생한 책이다. 책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까지 한국 과학의 토대를 만든 근현대 과학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한국에도 감동을 주는 탁월한 과학자들이 있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김근배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를 비롯한 10명이 15년간의 연구를 통해 발굴한 근현대 과학기술인은 30명. 최초의 화학자 리용규부터 지난달 타계한 위상수학의 권위자 권경환, 유기광화학 분야를 개척한 심상철까지 자연과학분야의 연구자들의 자취를 추적했다.
'과학자 열전'에 걸맞게 식민지·분단·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에 이들이 과학자의 길을 개척한 활동상이 충실히 담겼다. 일본 최고의 연구기관인 이화학연구소의 첫 조선인 연구자였던 김량하가 세계 최초로 비타민E 결정체 추출에 성공해 한국인 처음으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가 하면 수학자 리림학은 해방 직후 남대문 시장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미국수학회보'에 실린 미해결 문제를 풀어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대수학 분야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리군(Ree group)을 발견해 추상대수학 증명에 공헌한 21명의 수학자로 기록됐다. 이 밖에도 두만강 유역 모래에서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견한 지질학자 박동길이나 자신의 이름을 딴 '리아이링' 이론을 남긴 세계적 화학자 이태규의 업적도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암울했던 근현대사에서 과학자들이 겪어야 했던 굴곡진 삶도 흥미롭게 읽힌다. 좌우 이념 대립 국면에서 과학자 집단도 분열을 겪었고 많은 과학자가 월북하거나 미국으로 떠났다. 전쟁과 독재 정권의 통치는 해외에 체류하던 과학자들의 발을 현지에 붙들었다. 그러던 사이 북한에서는 정풍운동으로 과학자들이 숙청당했고, 남한에선 '빨갱이 과학자'의 이름이 금기시됐다. 어려운 시대에 일궈낸 과학자들의 성취에 가슴이 웅장해지다가도 역사 속으로 허무하게 사라진 인생에 가슴이 시려온다. "인물의 공과를 사실 그대로 적시하고, 인물에 대해 공정하고 엄정하게 다루려고 했다"는 저자들의 말대로 등장인물들의 생애와 시대상이 사실에 기반해 과장 없이 읽히는 것도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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