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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케이크 던진 '아름다운 소년'... 악행을 응징하면 선행인가

입력
2025.01.04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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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장편소설 '컵케이크 무장 혁명사'
아름다움으로 세상 구하려는 소년 '베니'
"착한 이야기, 실패하는 방식으로 쓰고파"

박지영 소설가. 교유서가 제공

박지영 소설가. 교유서가 제공

빼어난 외모의 베니는 일주일 내내 봉사활동을 하는 '아름다운 소년'이다. 월요일은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 화요일은 서울역 노숙인 저녁 배식, 수요일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녹음, 목요일은 양로원 목욕 봉사, 금요일은 유기견 구조센터, 토요일은 아프리카 기아 돕기 구호 활동, 일요일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집 짓기. 베니는 자기 존재의 아름다움을 나누는 방식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한다.

겉과 속이 똑같이 아름다운,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소년이라고 찬탄하기엔 이르다. 베니의 봉사는 자신처럼 아름답지 못한 타인을 향한 동정에 가깝다. “길을 걷다가도,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 추한 사람들을 보면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드는 베니에게 봉사는 본인의 아름다움을 빛나게 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그의 겉과 속은 아찔할 만큼 다른 셈이다.

세간의 관심 끄는 건 선행보다 '악행'

컵케이크 무장 혁명사·박지영 지음·교유서가 발행·256쪽·1만5,000원

컵케이크 무장 혁명사·박지영 지음·교유서가 발행·256쪽·1만5,000원

베니의 이런 행위는 그가 노숙인에게 우연히 목도리를 둘러주면서 시작된다. 전 여자친구가 선물한 목도리를 쓰레기 취급하려는 복수심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를 포착한 사진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며 베니는 단숨에 '아름다운 소년'으로 등극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외모가 아니면 남과 다를 것 없던 베니에게 '아름다운 소년'은 우연히 획득한 훈장이 됐다.

훈장을 받았으니, 본격적인 선행을 이어가야 할 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려는 베니의 '굿보이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베니는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을 굿보이로 선정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트리고, 상으로 달콤한 컵케이크를 건네 선행을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실행한다. 하지만 반짝 관심을 끌다 시들해진다. 초조해하던 베니는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의 얼굴에 냅다 컵케이크를 던진다. 악행을 응징하는 또 다른 악행은 노인을 돕는 선행보다 즉각적인 반응을 얻는다.

선함을 연기하는 '박지영의 인물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대중의 환호에 중독된 이들의 컵케이크 혁명은 점차 ‘무장’이 되어간다. 개인적인 제보를 받아 악을 처단하고, 이 과정을 영상으로 공개하는 온라인 자경단이 된 '컵케이크 혁명단'은 한국 사회가 환호하는 ‘참교육’의 재현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되찾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추악한 인간들을 카메라로 찍어 공개 재판하고, 단두대에 올리는 길이 결국은 가장 빠른 길”이라는 베니의 말은 자신이 판단하기에 지탄받아야 하는 존재에 ‘갑질남’ ‘민폐녀’ 등의 이름을 붙여 손가락질하는 현실 누군가의 신념과 다르지 않다.

사적 제재가 정의 구현으로 통하는 시대, 그러다 애먼 사람을 잡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 대의를 위한 소수의 아름다운 희생이라고 슬쩍 넘어가려는 이들에게 위선에서 시작해 위악으로 치닫는 소설 ‘컵케이크 무장 혁명사’는 묻는다. 누군가에게 “돌팔매질을 하면서 나는 다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선(善)의 의지인가. 비교적 답을 말하기 쉬운 이 질문을 지나면 소설을 추동하는 또 하나의 질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위선은 그래도 선일 수 있는가.

이달의 이웃비·박지영 지음·민음사 발행·472쪽·1만6,800원

이달의 이웃비·박지영 지음·민음사 발행·472쪽·1만6,800원

사회가 원하는 선함을 연기하는 인물은 박지영의 소설에서 자주 주인공의 자리를 꿰찬다. 박지영의 첫 소설집 ‘이달의 이웃비’(2023)에서도 치매에 걸린 가족이나 장애 이웃을 돌보는 착한 행동으로 쓸모를 인정받으려는 이들의 고군분투를 그렸다. 이 소설집과 ‘컵케이크 무장 혁명사’에서 위선은 끝내 밑천을 드러내나, 이야기는 단순한 단죄로 매듭지어지지 않는다. “구원에 대한 착하고 다정한 이야기를, 실패하는 방식으로 계속 써나가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작가의 말처럼 박지영의 인물들은 실패의 길을 기꺼이 다시 걷는다. 서투르지만, 마냥 지켜보고 싶은 걸음들이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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