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6일 한국일보가 삼성물산의 근로자 작업중지권 활용 사례를 보도했다. 근로자 작업중지권을 전면 보장한 지 3년 만에 그 횟수가 30만 건을 넘었고 휴업재해율이 매년 15%까지 감소했다고 한다. 우수 사례를 포상하고 협력업체에서 손해가 발생하면 그 비용을 보상해준 결과다. 작업중지권의 남용으로 인한 업무 효율 감소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근로자가 현장에서 위험을 눈으로 확인하고 제거하는 것은 안전관리의 처음과 끝이다. 정부는 작업자가 위험을 찾아내도록 촉구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급박한 위험에 대한 소극적 해석과 권한을 남용할 것이라는 시각 때문에 근로자 작업중지권이 활성화되지 못했었다. 이를 바꾼 것은 사업주의 태도 변화다.
사업주의 마음가짐이 안전관리 성패의 핵심임은 싱가포르 사례가 잘 보여준다. 싱가포르는 2005년 작업장안전보건법을 사업주가 지켜야 할 사항을 일일이 정해주는 지시적 규제에서 목표는 정해주되 그 수단은 자율에 맡기는 목표기반 규제로 바꿨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2004년부터 2018년까지 사망률을 무려 76% 줄일 수 있었다.
지시적 규제방식에서는 사업주의 안전관리는 규정을 지키느냐의 문제가 되고, 사업주의 관심은 규정위반을 따지는 단속을 피하는 데 머물게 된다. 사고가 나면 규정을 지켰으니 규정을 만들고 단속을 한 정부나 전문기관 책임이라고 발뺌하기 일쑤다. 2018년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이 법으로 강화됐을 때에도 기업들은 이를 회피하는 방안을 찾는 데 몰두했다.
목표기반 규제방식에서는 목표 달성수단에 대한 자율성이 주어진 만큼 안전관리를 사업주가 주도하게 된다. 안전관리 주체가 된 사업주는 가장 효과적이고 저비용인 조치를 찾게 되고, 혁신을 촉진하게 된다.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이 재해예방에 효과적이라고 판단되면 법적 권한 여부를 떠나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들고, 사고방지에 인공지능이 필요하면 지체 없이 혁신을 택할 것이다.
삼성물산은 근로자 작업중지권에 대한 우려가 있음에도 안전관리에선 노사 이익이 일치함을 믿고 결단하고 실행했다. 정부도 사업주가 안전관리 주도자임을 믿고 맡기는 결단을 해야 한다. 자율안전관리가 정착되도록 제도를 혁신하고 잘하는 기업을 포상하며 도움이 필요한 기업은 지원해야 한다. 책상머리 규제보다 사업주와 근로자가 머리를 맞대는 현장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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