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 사고 후 맥주 산 의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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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994년 6월 도주극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던 미식축구 스타 O. J. 심슨의 백인 전처 살해 혐의가 무죄로 인정된 건 유죄를 입증할 숱한 증거 가운데 훼손된 증거 탓이 크다. 피살된 전처에 살인범의 것으로 보이는 혈액이 묻어 있었지만 경찰은 시신을 씻어 보관했고 혈액 대조를 위해 채취한 심슨의 혈액도 90%가 사라졌다. 범행도구인 피 묻은 검정 장갑은 심슨 손에 맞지 않았다. 범인이 아닐 가능성을 물고 늘어진 변호인 전략도 배심원 평결에 영향을 미쳤다.
□민사에선 유죄가 인정된 심슨 사건에서 보듯이 형사 사건의 증거 증명은 훨씬 엄격하다. 증거에는 물증만 아니라 ‘인증’ 즉 관련자 증언이 있다. 고교 시절 학교폭력과 가혹행위로 기소된 프로야구 선수 두 명 중 한 명이 지난 23일 1, 2심에서 특수 폭행 혐의를 벗고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피해자는 부산에서 열린 대회 당시 폭행이 있었다고 주장하나, 사건 당일 폭행 현장에 피고인이 '현실적으로' 있기 어렵다는 재판부 판단이 작용했다.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은 증거재판과 맞물려 있다.
□ 음주운전 치상 사고와 뺑소니 혐의로 구속된 가수 김호중 사건은 사법방해로 이름 붙여진 증거 훼손과 은폐가 여럿 동원됐다. 운전자 바꿔 치기와 허위 자수, 차량의 블랙박스 메모리 훼손, 사고 발생 17시간 뒤 경찰 출석 등 음주운전 사건의 고전적인 법망 회피 수법이 망라돼 있다. 눈에 띄는 건 음주운전 사고 후 추가 음주다. 김호중은 사고 후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샀다. 경찰조사에 대비한 방어전략이라면 ‘신박’하다.
□ 대검찰청이 음주운전 사고 후 의도적 음주가 혈중알코올 농도 수치 입증 부족으로 무죄가 선고되고 있다고 처벌 규정 신설을 법무부에 건의했다. 사법기관 창에 맞서 갖가지 법망 회피 방패 동원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증거 재판에 맹점이 있다고 해서 느슨하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권력의 횡포나 ‘네 죄를 알렸다’식의 사또 재판, 마녀 사냥, 인민 재판 과정의 악순환을 거쳐 만들어진 역사적인 산물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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