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비수도권 균형발전은 시대적 과제
소양강댐, 밀양 송전탑은 지방 희생의 사례
불균형에 책임 느끼는 윤리 감각 필요해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수도권과 지역(비수도권) 간 불균형 해소는 이견이 없는 시대적 과제다.
역대 정부 모두 ‘국민대통합을 위한 지역균형 발전’(박근혜 정부), ‘국가 균형발전’(문재인 정부), ‘지역주도 균형발전’(윤석열 정부) 같은 이름으로 이를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안타깝게도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통계를 보면 30대 대기업의 95%가, 10대 종합대학의 100%가 수도권에 있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일자리, 교육기회, 보건의료 인프라 등이 여전히 수도권에 몰려 있으니 쉽게 개선될 리 없다. 지난 10년간 수도권·충청권과 기타 지역권(부산·울산, 호남, 대구·경북권)과의 경제성장률 격차가 2.4배로 벌어져 그 이전 10년보다 더 커졌다는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를 보면, 상황의 개선은 고사하고 악화를 늦추는 일조차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헌법(123조)은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보전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비수도권 상당지역은 인적∙물적 자원, 생태계가 수도권을 위해 희생된 사실상 ‘수도권 식민지’가 된 게 현실이다. 여기에는 오랜 이력이 있다. 박정희 정권의 3대 역사(役事) 중 하나로 꼽히는 소양강댐이 실례다. 1973년 댐이 완공되면서 강남을 포함한 서울 동남권은 상습 수해위험에서 벗어났고 이후 어마어마한 도시개발의 혜택을 입었다. 반면 댐 건설로 강원 춘천시, 양구군, 인제군 일대 3,000여 가구는 수몰민이 돼 고향을 떠났고, 양구군은 지리적으로 고립되면서 몰락했다. 당시 정부에서 나온 '소양강댐 준공기념우표'의 도안은 상징적이다. 서울을 지나 서해로 흐르는 한강 수계가 배경인데 영문으로 소양강댐과 서울이 표기돼 있다. 반면 댐과 가장 가까운 춘천의 지명은 빠져있다. 왜 누구를 위해 이 댐이 만들어졌는지를 증언한다.
꼭 10년 전 농성장 강제철거로 끝난 경남 밀양 송전탑 사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원전 전력을 대도시로 송전하는 고압(765kV) 송변전 설비 설치계획에 따라 여러 송전탑이 밀양에 세워지게 되면서 사달이 났다. 정부, 한전, 밀양시 관계자들은 ‘나라가 하는 일이라 동참해야 한다’, ‘자녀가 불이익을 받는다’, ‘반대하는 사람 사이에 불순분자가 섞여 있다’ 같은 반협박과 감언이설로 나이 든 밀양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냈다.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지내던 이웃사촌들이 보상금 때문에 원수지간으로 변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마을의 전통과 역사, 공동체 가치들이 ‘돈’ 앞에 허물어졌다. 생태계 훼손과 공동체 파괴라는 비수도권 주민들의 유∙무형 희생은 오직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 때문이었다.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을 기록한 김영희 연세대 교수의 ‘전기, 밀양-서울’(2024)은 밀양 주민의 이런 증언으로 시작된다. “데모하러 서울 갔는데 대낮겉이 밝아갔고 훤-하이. 이래 전기 갖다 쓸라고 우리 집 앞에다가 송전탑 세운기구나.”
밀양사태까지 거슬러 갈 것도 없다. 동해안 원자력발전소, 화력발전소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동해안 송배전로 건설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홍천에서도 2014~2019년 즈음 한전이 밀양과 같은 수법으로 송전탑 건설에 찬성하는 특정 단체에만 지원금을 준 의혹이 제기됐다.
전기가 모자라 전기를 비수도권에서 끌어와 쓰는 수도권의 전력자급률(서울 2%, 경기 54%)과 전기가 남아도는 비수도권의 전력자급률(경북 185%, 전남 197%)의 건조한 숫자 뒤에는 이런 부정의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최소한 수도권의 번영이 비수도권의 희생 위에 서 있다는 윤리감각만은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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