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 여성 오애순(오른쪽)를 중심으로 20세기 중후반 한국사회 시대상을 화면에 복원한다. 넷플릭스 제공
2015년 11월이었다. 국민을 열광케 하는 드라마가 등장했다. 케이블채널 tvN의 ‘응답하라 1988’이었다. 1988년 즈음을 배경으로 서울 변두리 쌍문동 서민을 통해 가족애와 청춘의 풋풋한 사랑, 이웃 간의 정을 그렸다. 당시 40대 이상은 추억을 되새겼고, 젊은 세대는 옛것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했다. ‘응답하라 1988’에서 파생된 유행어 ‘어OO’(‘어차피 OO는 OO’의 줄임)는 아직도 통용된다.
‘응답하라 1988’로 청춘 스타가 된 혜리와 박보검, 류준열, 안재홍은 지금도 국내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요 배우로 활동 중이다. tvN은 지상파가 지배하던 방송 시장을 재편했다. ‘방송 3사(KBS와 MBC, SBS)’라는 말 대신 tvN을 포함해 ‘방송 4사’라 칭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국민 드라마’라는 호칭이 붙을 정도로 ‘응답하라 1988’이 열풍을 일으켰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10년이 지났다. 지금 국민 마음을 사로잡는 드라마가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폭싹 속았수다’다. 제주 여성 오애순의 삶을 중심으로 1960~1990년대 한국사회를 되짚는다. 우리네 엄마들의 숨은 노고와 한숨, 한국사회를 바꾸려 한 딸들의 반란 등이 추억을 자극하며 시청자들을 20세기로 시간이동 시킨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명작 드라마의 탄생” “올해의 드라마” 식의 호평이 쏟아진다.
‘폭싹 속았수다’는 세계적으로 히트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리즈나 ‘더 글로리’ 시리즈 등과는 다르다. ‘오징어 게임’과 ‘더 글로리’는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에 기대어 해외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다면 ‘폭싹 속았수다’는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를 한국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시대극이다. ‘세계’보다 ‘국민’을 더 겨냥한 드라마다.
K콘텐츠 경쟁력 분석 회사 굿데이터코퍼레이션 조사(3월 3~9일 기준)에 따르면 ‘폭싹 속았수다’ 시청자의 25.8%는 40대, 14.8%는 50대 이상이다. 젊은 세대에 비해 지상파와 케이블 등 기성 방송을 더 친밀하게 여기던 중년층 이상이 넷플릭스 앞으로 집결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폭싹 속았수다’는 기성 방송이나 누릴 수 있었던 국민 드라마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폭싹 속았수다’ 제작에 600억 원가량을 쏟았다고 한다. 총 16회로 구성됐으니 회당 37억 원 넘게 들어간 셈이다. 넷플릭스를 제외하고 한국 시대극에 이 정도 거액을 쓸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폭싹 속았수다’는 2016년 한국에 진출한 넷플릭스에 또 다른 이정표로 기억될 듯하다. ‘글로벌 OTT’라는 거리감 느껴지는 수식이 붙는 넷플릭스가 이미 ‘국민 방송’이 됐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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