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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의 대가’ 정유정의 신작엔 로맨스가 있다..."사랑은 인생의 큰 동력"

입력
2024.08.30 13:00
수정
2024.09.02 10:2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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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영원한 천국’ 정유정 인터뷰
모든 것이 가능한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세계를 이겨내려는 욕망, 야성” 그려내

정유정 작가. 은행나무 제공

정유정 작가. 은행나무 제공

“인간을 유혹하지 못하는 자는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대로라면 소설가 정유정(58)은 탁월한 유혹자이자 구원자임이 분명하다. 올해 여름 그가 ‘영원한 천국’이라는 형태의 구원으로 찾아왔다. 이른바 욕망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인 장편소설 ‘영원한 천국’은 “거대 네트워크이자 빅 데이터이며 통합 플랫폼”인 가상 세계 ‘롤라’를 두고 벌이는 복마전을 그린다.

정 작가는 29일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출판사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원하는 모든 것이 이뤄지고 결핍과 갈등이 없는 영원한 천국에서도 과연 인간의 본질에는 ‘욕망’이 남아있을지를 질문했다”고 전했다.

스릴러 대가의 로맨스 소설?

영원한 천국·정유정 지음·은행나무 발행·524쪽·1만9,800원

영원한 천국·정유정 지음·은행나무 발행·524쪽·1만9,800원

“나는 그 남자의 집에 초대되었다”는 ‘영원한 천국’의 첫 문장은 주인공 ‘해상’과 함께 독자를 그의 세계로 이끈다. 정 작가는 “보통 소설을 어느 정도 쓴 상태에서 첫 문장으로 쓸 문장이 있는지를 찾는데 이번에는 첫 문장에서부터 바로 소설이 시작됐다”고 귀띔했다. 그 남자 ‘경주’의 집에서 해상은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연인 ‘제이’가 노숙인 재활원에서 보안요원으로 근무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의 만남으로 롤라의 존재가 드러나고 ‘인간의 마지막 욕망’도 질주한다. 정 작가는 “영원한 천국에서도 순응이 아니라 그 세계를 이겨내려는 욕망, 즉 야성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인 인간의 자유의지의 끝이기도 하다.

정 작가는 이번 소설을 “스릴러이자 공상과학(SF)이자 로맨스”라고 설명했다. 등장인물인 해상과 경주는 각자의 연인과 사랑에 빠져 본격적인 로맨스를 펼친다.

스릴러의 대가의 로맨스라니. 정 작가는 “전작(‘완전한 행복’)에서 로맨스 장면이 짧게 등장했을 때 ‘제대로 써달라’는 독자의 요청이 있었다”면서 “처음에 해상과 제이는 남매였는데 영 진척이 되지 않더라”고 말했다. 소설을 쓰던 중 방문한 이집트 바하리야 사막에서 마주친 사막여우의 눈은 ‘운명적인 사랑’으로 그를 이끌었다. 정 작가는 “젊은 친구들이 읽고 ‘아줌마의 로망’이라고 생각할까 염려도 됐다”며 웃었다. 올해 서른이 된 아들이 원고를 보고 “전혀 올드하지 않다”고 힘을 줬다는 후문이다. 정 작가는 “사랑이 인생의 큰 동력이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심연에서도…“결국은 인간이 희망”

소설가 정유정이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자신의 신작 '영원한 천국'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설가 정유정이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자신의 신작 '영원한 천국'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을 핍진하게 그린 정 작가에게 유발 하라리와 칼 세이건, 안토니오 다마지오 등 세계적인 석학뿐 아니라 의외의 인물이 도움을 줬다. 바로 구독자가 100여 명인, ‘깍두기’ 조직폭력배 출신의 유튜버다. 폭력적인 ‘칼잡이’라는 인물의 말투나 행동 묘사에 어려움을 겪다가 겨우 찾아낸 인물이다. 정 작가는 “교도소도 몇 차례 다녀오고 속된 말투와 행동을 하는 유튜버의 브이로그를 가만히 지켜보자니 처음에는 이질적이었지만, 어느 날 자연스럽게 칼잡이가 나왔다”고 전했다. “그분께 감사하다”라고 정 작가는 거듭 말했다.

대표작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등 악의 3부작에 이어 욕망 3부작까지 꾸준히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면서도 정 작가는 “결국은 인간이 희망”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제 소설은 인간의 나쁜 면모를 경계하자는 것이지 ‘이래서 인간이 싫다’라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인간은 과학이 도착할 현명한 지점을 찾아낼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런 희망은 ‘성실함이 독창성의 원천’이라고 여기며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커피와 메탈 음악으로 잠을 깨우고, 종일 글을 쓰다 오후 5시부터는 운동을 하는, '실천하는 사람'만이 지닐 긍지일지도 모른다.

이번 작품 출간으로 정 작가가 재작년까지 암으로 투병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38차례의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도 “가까스로 세상에 소설가라고 자신을 소개할 무대가 생겼다”며 지리산 암자와 히말라야를 오가며 글을 손에 쥐었던 이야기꾼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완전한 행복’은 무서운 언니가 쓴 소설이었다면 ‘영원한 천국’은 다정한 소설이었죠. 피폐해지고 파괴되는 느낌이 들면 다정한 언니로 가려 해요. 이제 회복되었으니 무서운 언니로 돌아가야죠”라는 정 작가다. 차기작으로 ‘공포 스릴러’를 염두에 뒀다는 그는 살짝 귀띔했다. “사실 ‘영원한 천국’ 에필로그에 차기작 힌트가 있답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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