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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상실'이 떠오르는 문지혁의 소설엔 우연한 신비와 쓸쓸함이 있다

입력
2024.11.05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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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작2·가나다순>
문지혁 단편소설집 '고잉 홈'

편집자주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7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문지혁 작가. ©윤관희

문지혁 작가. ©윤관희

문지혁의 단편소설집 ‘고잉 홈’에서는 인공지능(AI) 시대를 사는 미국 뉴요커들을 만날 수 있다. 수록작 ‘골드 브라스 세탁소’의 주인공 ‘영’의 말처럼 “가로세로 반듯한 길에서조차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다. 세탁소의 간판은 신처럼 길 잃은 뉴요커들을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완전히 절망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아직 살아 있고 인물들은 매 순간 심호흡을 하고 숨을 고르며 일상을 살아간다. 그곳이 최첨단의 도시 뉴욕이라고 해도.

소설집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인물들이 선택하는 걸음걸이의 방식이다. ‘크리스마스 캐러셀’의 주인공은 디즈니랜드에서 사라진 입양아인 조카 ‘에밀리’를 어렵게 찾는다. “그냥 다시 혼자가 되어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어린 조카를 위해 주인공은 신데렐라 캐슬로 다시 가자고, 가면 불꽃놀이를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움직이는지 안 움직이는지 알 수 없는 회전목마 위에 앉아서.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불안 속에서도 희망을 보여주려는 안간힘이다.

문지혁 소설집 '고잉 홈'

문지혁 소설집 '고잉 홈'

표제작인 ‘고잉 홈’은 500달러를 벌기 위해 AI 실험에 참여한 화자 ‘현’이 무사히 집에 돌아가기까지의 하룻밤의 이야기다. 정체성과 글쓰기, 그리고 언어의 모험을 엿볼 수 있다. 현은 돈을 버는 대가로 사실이지만 가짜 같은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지껄여야 한다. 없는 누나도 만들어내고 매형도 만들어낸다. 기묘한 하루는 끝나지만, 무엇이 진짜이고, 어떤 게 삶이며, 어떤 게 가짜냐는 질문은 그대로 남아 있다.

방황하는 미국 이민자들, 유학생들의 이야기는 문지혁의 경험에서 나왔다. 그를 떠올리게 하는 유학생 부부가 등장하는 수록작 ‘나이트호크스’에서 ‘아내’는 12월 31일 집에서 스테이크를 만들다 손목을 다친다. 부부는 병원을 돌아다니다 겨우 기초 처치를 하고, 우연히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있는 한 식당으로 간다. 부부는 호퍼의 그림 ’나이트호크스’의 인물 중 자기가 누구와 닮았는지 이야기하고는 식은 스테이크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스테이크를 만들기 직전 그들이 나눴던 대화는 1940년대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의 대화로 바뀌는 느낌을 준다. “왜 사는 걸까?”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 걸까.” “죽을 순 없잖아.”

인간 삶에 수반되는 불안에 대해, 상실에 대해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갑자기 천장의 수납장에서 떨어져 내린 오래된 접시, 찢어진 아내의 손목, 의료보험도 없이 병원을 전전하는 뉴욕에서 보내는 그해의 마지막 밤. 문지혁의 소설을 읽으면 심리학자 폴린 보스의 ‘모호한 상실’이라는 책의 제목이 떠오른다. 무엇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모호함이라는 삶, 골드 브라스 세탁소(GOLD BRASS CLEANERS)의 간판이 ‘GOD BLESS’가 되는 우연한 신비와 쓸쓸함이 거기에는 있다.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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