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 계엄 문건과 비교해보니
비상계엄 위한 교통·통신·언론·사법 통제 미비
병력 6200명, 탱크 200대, 장갑차 550대→병력 280명
계엄 선포 30분 후에야 1호 포고령… 지휘 체계 혼선
尹 독단적 결정 탓 준비 부족… 미신 경도돼 오판 추측도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계엄군의 조치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계엄 성공의 필수 조건인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의결을 막기 위한 움직임도 '사전'이 아닌 '사후'에 이뤄졌다. 언론사의 보도를 통제하기 위한 병력도 투입되지 않았고, 당연히 3중 방어로 철통같이 보호해야 할 대통령실 주변에 대한 경호처의 통제도 이뤄지지 않았다. 헬기까지 동원해 현장에 급파된 육군 최정예 부대 병력들이 고령의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어 본회의장에 진입하도록 방치했다.
2017년 작성된 '기무사령부 계엄문건'에 비해 터무니없이 허술한 조치다. 이번 계엄 주도세력이 참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다. 당시 전문가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을 대비한 해당 문건에 대해서조차 "실행 가능성이 없는 조잡한 문건"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에 비춰 이번 계엄 선포가 얼마나 졸속으로 추진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2018년 공개된 기무사 문건에는 시국에 따라 단계별로 위수령-경비계엄-비상계엄 순으로 실시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곧바로 전국을 대상으로 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문건에는 비상계엄 실시를 위해 △집회·시위 봉쇄를 위한 특정지역(청와대, 광화문, 국방부 등)에 휴대폰 전파방해 및 '목' 지점 차단 △계엄사범 색출은 합동수사본부에서 정보수사기관(국정원, 경찰, 군사경찰 등)을 조정·감독해 시행 △언론 통제를 위해 계엄사 보도검열단(48명) 및 합수본부 언론대책반(9명) 편성·운영 △사이버 유언비어 차단을 위해 방송통신위원회 주관 '유언비어 대응반' 운영 등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3일 계엄사령부는 합수본과 보도처를 제대로 설치하지도 않았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준장 진급과 함께 육군 정훈실장에 보임된 박성훈(육사 50기) 계엄사 보도처장은 서울로 올라오던 중 계엄 해제 소식을 들을 정도였다. 전국 단위 계엄임에도 서울 이외 지역을 관할할 지구계엄사령부 설치도 없었다.
투입된 병력도 턱없이 부족했다. 문건에는 "계엄군은 기계화 6개 사단, 기갑 2개 여단, 특전사 6개 여단 등이 맡는다'고 적시돼 있지만, 전날 국회에 동원된 병력은 특전사와 수도방위사령부 휘하 병력 280여 명에 불과했다. 문건은 서울 지역 부대 편성에 중요시설(청와대, 헌법재판소, 정부청사, 국방부·합참) 및 집회 예상지역 방호를 위해 군 병력 6,200여 명(대기 병력 포함), 탱크 200여 대, 장갑차 550여 대 등을 동원하도록 계획하고 있다.
임철균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전문연구원은 "비상계엄은 선포와 함께 서울시청, 각 정부 청사 등 주요 기관과 언론사에 병력이 투입돼 점령을 종결해야 한다"며 "하지만 이번엔 국회 이외엔 아무것도 전개된 것이 없었고, 심지어 국회에 투입된 특전사조차 준비 없이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토록 비상계엄 조치가 허술했던 배경으로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지휘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분석을 내놨다. 한설 전 육군역사연구소장(예비역 육군 준장·육사 40기)은 페이스북에 "계엄사령부 예하 부대 각급 지휘관들이 내란 성격이 분명한 사태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고 지적했다. 즉 '용현파'로 분류되는 이진우 수방사령관, 곽종근 특전사령관 휘하의 부대만으로 계엄사를 운영했기 때문에 계엄을 현실화하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오후 10시 30분에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30분이 지나서야 1호 포고령이 나온 것 자체가 계엄사령부 설치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는 방증"이라며 "유사시 30분은 엄청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며, 실제 그 시간 공백이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성급하고 독단적인 결정 탓에 비상계엄이 초라하게 추진됐다는 의견도 있다. 다른 군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계엄사 포고령 1호에 파업 전공의의 복귀를 언급하며 '처단' 운운한 것은 윤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른 세력에 대한 개인적인 분노가 담긴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한 전 소장은 이번 계엄 발령에 "천공-김건희-김용현 라인이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윤 대통령이 미신에 경도돼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고 봤다.
일각에서는 준비가 부족했음에도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시점을 못 박아 놓은 탓에 강행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12월 3일 10시 30분을 한자로 풀면 '十ニ월(王) 三일 十시(王) 三十분(王)'이 된다는 것이다. 2021년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방송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의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가 적혀 있는 장면이 포착되면서 무속에 기댄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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