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 논의 정지
실손보험 개혁 등 추진력 잃을 우려
꼭 필요한 정책 “일관성 유지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사태 후 탄핵소추에 직면한 가운데, 그나마 지지가 높았던 의료개혁마저 동력을 잃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공의 미복귀 시 처단’ 경고가 담긴 계엄 포고령에 의사계 반발이 더 극렬해진 것도 악재다. 다만 의료개혁이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인 만큼 정치적 혼란과 무관하게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의료개혁특위 회의 연기, 실손보험 개혁안 어떡하나
4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이날 예정돼 있던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 ‘필수의료 공정보상 전문위원회’ 12차 회의가 긴급 연기됐다. 보건복지부가 이달 말 발표하는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에 담길 비급여·실손보험 개혁안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기구다. 19일에는 공청회도 잡혀 있다. 하지만 모든 일정이 불확실해졌다.
의개특위 A위원은 “수개월간 의욕적으로 논의에 참여한 관계자들과 단체들 모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며 “의개특위가 대통령 직속이라 대통령이 탄핵되면 설사 개혁안이 발표되더라도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의료사고 안전망, 2차 병원 육성, 1차 의료 혁신, 불공정 수가 체계 개선 등 의개특위에서 의제화해 논의 중인 다른 후속 과제도 많다. 의료계 B관계자는 “정권이 바뀌면 전임 대통령 흔적 지우기에 나서지 않냐”며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의료개혁도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권과 별개로 높은 지지··· “국민 위해 반드시 실행해야”
의료개혁은 윤 정부 아래 진행된 여러 과제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성과를 낸 정책이다. 내년 의대 증원은 사실상 마무리돼 이달 중순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있다.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사업은 전체 47개 상급병원 가운데 42곳이 참여하는 등 진척 속도가 빠르다.
의대 증원에 대한 국민 지지도 높다. 보건의료노조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55.7%가 정부 계획대로 의대 증원을 추진해야 한다고 답했고, 의대 증원 백지화 찬성은 31.3%에 그쳤다. 내년도 의대 신입생을 아예 선발하지 말라는 의협 요구안에는 62.5%가 ‘의료시스템을 흔드는 무책임한 주장’이라며 반대했다.
전문가들은 계엄 사태에도 의료개혁을 흔들림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연합 사회정책국장은 “의료개혁은 대통령 잘못과 무관하며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민을 위해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라며 “이미 늦어졌는데 더 지체되거나 중단된다면 우리 사회에 큰 피해로 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도 “지금까지 의료개혁 논의가 이 정도로 진전된 적은 없다”며 “정책은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게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계엄 포고령에 의사계는 극도 분노
계엄사령부 포고령에 ‘48시간 내 전공의 복귀’ 명령과 함께 ‘위반 시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경고가 담긴 것도 의정 갈등을 깊게 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와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는 공동 성명에서 “전시 상황에서도 언급할 수 없는 망발을 내뱉으며 의료계를 반국가 세력으로 호도했다”며 “윤 대통령은 국민에 대한 탄압을 당장 멈추고 하야하라”고 요구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선거에 출마한 서울대 의대 교수인 강희경 후보는 “국민을 처단한다? 처단당해야 할 것은 이런 말을 내뱉는 자”라고 직격했고, 전국광역시도의사회협의회장인 김택우 후보도 “정부가 전공의를 처단한다고 적시한 건 전공의를 적대시함으로써 정권의 잘못을 호도하려는 얄팍한 수작질”이라고 비판했다. 의협 대변인인 최안나 후보는 의개특위에 참여한 대한병원협회에 탈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의사계 반발이 거세지면서 내년 전공의 복귀도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내년 상반기부터 수련할 전공의 6,950명(1년차 레지던트 3,594명, 인턴 3,356명) 모집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 수는 많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계엄 포고령에 전공의 처단이 적시되면서 복귀 의향이 있던 전공의들마저 혼란에 빠진 것으로 전해진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