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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선거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생각하자

입력
2024.12.06 10:48
수정
2024.12.10 11: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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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2·3 불법계엄 사태 이후 난국 타개를 위해 국민적 지혜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치우치지 않는 여론 형성에 기여해 온 한국일보는 각계 전문가들이 보내온 다양한 의견과 수습 방안을 온라인에 전문 게재키로 했습니다. 다양한 견해와 의견이 소개되는 만큼 기고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16년 12월 9일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는 모습. 연합뉴스

2016년 12월 9일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는 모습. 연합뉴스

우리 국회 역사상 대통령 탄핵안을 처리한 두 번 모두 나는 의장석을 지켰다. 한 번은 탄핵을 막기 위해서였고, 또 한 번은 탄핵을 하기 위해서였다. 세 번째 탄핵 절차는 지난 12월 3일 한밤중의 느닷없는 계엄령 선포로 촉발됐다.

"1974년 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 / 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 / 네 눈 속의 빛을 죽음이라 부르자."

50년 전 긴급조치 1호 발동을 접한 김지하 시인의 절규다. 나의 대학 시절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역사의 시계추를 순식간에 반세기 전으로 돌려놓았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 시민들은 그 옛날 어두운 눈빛으로 '사라지던' 시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해 온 시민들은 불과 6시간 만에 불법적 계엄령을 무효로 만들었다.

이번 사태는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지만, 동시에 엄청난 회복력을 보여준 계기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지켜낸 우리 시민들과 국회가 자랑스럽고 고맙다. 평화적 종결을 이뤄낸 우원식 의장과 의원들께 존경을 표한다. 야당만이 아니라 애국적 결단을 해준 한동훈 대표에게도 깊이 감사드린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허무맹랑한 계엄령을 불쑥 던진 대통령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과도 해명도 없다. 이런 무도한 권력 행사를 정지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중차대한 일이다. 많은 국민이 마음을 졸이며 탄핵안 표결을 기다리고 있다.

탄핵안은 반드시 가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분열의 씨앗이 되면 절대 안 된다. 반드시 국민 통합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난밤 날을 세우며 계엄령을 무력화시킨 여야 협치가 반드시 재현되어야 한다. 당적을 떠나 모두가 입법부의 일원으로서 하나가 되어 부패하고 무도한 행정수반을 주저앉혀야 한다.

국민의힘 의원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어려운 일임을 모르지 않는다. 자신들이 대표로 내세운 대통령을 향해 내려오라고 명령하는 게 어찌 쉽겠는가. 그럼에도 당론이 아니라 양심에 따라 표결에 응해주기를 바란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격언이 있다. 지금 정치가로서 제 역할을 못하면 역사에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길 당부드린다.

탄핵소추안 가결을 위한 민주당의 책임도 크다. 민주당은 거대 야당으로서 현재의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 막스 베버는 정치가에게 신념윤리가 아니라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하는 책임윤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정신을 상기해야 한다. 상대를 궁지로 몰아서는 절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 완승을 바라다 필승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대통령 탄핵이 조기 대선, 정권 이양으로 이어질까 봐 주저하는 보수까지 품어야 한다. 당파적 유불리에서 벗어나 정의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출구를 열어 주어야 한다.

탄핵을 이루지 못해 진영대결과 충돌로 이어진다면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는 혼란을 넘어 몰락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만에 하나 탄핵안이 부결되고 시민사회의 충돌로 번진다면 '진짜로 계엄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대통령이 버티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어제의 '희극'이 내일의 '비극'으로 돌아오지 말란 법이 없다.

책임 있는 정치인 모두에게 제안한다. 대통령을 탄핵시킨 후 개헌 절차를 밟자. 대통령제는 우리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좋은 대통령이 가져올 유익보다 나쁜 대통령이 가져올 해악이 국가에 너무도 치명적이다. 이제는 결단해야 한다. 헌정중단 사태를 맞아 국민들이 모아낸 열정과 용기가 허비되지 않도록 하자.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켜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헌정체제를 전환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내년 봄에는 새로운 공화국을 수립할 국민투표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나는 두 번의 탄핵을 겪고 세 번째 탄핵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 나는 민주당의 당원이지만 정치에 대해 여야를 떠나 비교적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신분이다. 정치인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정치는 싸우는 일이다. 얼마든지 싸워도 좋다. 대신 시민이 싸우지 않도록 대신 싸우는 게 정치다. 시민을 싸움판으로 몰아내는 정치는 '정치'라고 부를 수 없다. 지금 시민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다음 선거가 아니라, 다음 공화국을 준비하는 정치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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