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 첫 노벨문학상 한강 “어두운 밤에도 우릴 잇는 건 언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 첫 노벨문학상 한강 “어두운 밤에도 우릴 잇는 건 언어”

입력
2024.12.11 09:40
수정
2024.12.11 10:37
1면
0 0

"문학, 생명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연회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스톡홀름=연합뉴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연회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스톡홀름=연합뉴스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가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이라고 10일(현지시간)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한강은 이날 오후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의 스톡홀름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 연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한강은 이어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언어는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언어는 우리를 서로 연결한다”며 “우리를 서로 연결해주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품게 된다”고 문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한강은 지난 7일 수상 강연에서처럼 여덟 살 때 기억을 회상하며 소감을 밝혔다. 그는 “오후 주판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중,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더니 하늘이 열렸다”며 “비가 너무 강해서 아이들이 건물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길 건너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고, 그 처마 아래에도 여기에서처럼만큼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쏟아지는 비와 내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며 “나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이 모든 사람, 그리고 길 건너편에 있는 저 모든 사람은 권리를 가진 ‘나’로 살고 있었다”며 “저와 마찬가지로 각자 이 비를 보고 있었고, 촉촉함을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한강은 “너무나 많은 일인칭 시점을 경험한 경이로운 순간이었다”며 “읽고 쓰는 데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저는 이 경이로운 순간을 반복해서 경험했다”고 말을 이었다.

수상 강연에서 읊었던 자작시 ‘빛과 실’을 다시 언급했다. 한강은 “언어의 ‘실’을 따라 또 다른 마음 깊은 곳으로, 다른 내면과의 만남,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질문을 그 ‘실’에 맡기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난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 등은 수천 년 동안 문학에서 제기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인간으로 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가장 어두운 밤에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는 언어가 있다”며 “이 언어는 사람들과 생명체의 일인칭 관점을 상상하라고 한다”고 소감을 끝맺었다.

이날 시상식 후 열린 연회에는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과 울프 크리스테르손 총리, 스웨덴 한림원 관계자 등 1,200여 명이 참석했다. 검은 드레스 차림의 한강은 스웨덴 국왕의 사위 크리스토퍼 오닐과 함께 연회장에 입장해 국왕과 대각선으로 마주 보는 자리에서 연회를 즐겼다.

한강 수상 소감 전문



폐하, 왕실 전하, 신사 숙녀 여러분.

제가 여덟 살이던 날을 기억합니다. 오후 주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하늘이 열리더니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비가 너무 세차게 내리자 20여 명의 아이들이 건물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길 건너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처마 밑에 또 다른 작은 군중이 보였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 제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저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이 모든 사람들, 그리고 건너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나’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요. 저와 마찬가지로 그들 모두 이 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제 얼굴에 촉촉이 젖은 비를 그들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일인칭 시점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글을 읽고 쓰면서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니 이 경이로운 순간이 몇 번이고 되살아났습니다. 언어의 실을 따라 또 다른 마음속 깊이로 들어가 또 다른 내면과의 만남.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질문을 실에 매달아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 그 실을 믿고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 이러한 질문은 수천 년 동안 문학이 던져온 질문이며,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가장 어두운 밤, 우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묻는 언어,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생명체의 일인칭 시점으로 상상하는 언어, 우리를 서로 연결해주는 언어가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지니고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되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문학을 위한 이 상이 주는 의미를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