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시상식 이튿날인 11일 기자간담회
어릴 때 시·경험 소개한 한강 "과거 돌아봐"
번역가들에 감사... "우리는 문장 속에 함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강연문을 쓰면서 제 과거를 많이 돌아보게 됐고, 내가 어디쯤 있고 어디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는지 '좌표'를 파악하게 됐다. 여태까지도 늘 써 왔는데 앞으로 글을 쓰는 게 어려워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돼서 계속 '쓰던 대로' 쓰려고 한다."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출판사 '나투르 오크 쿨투르'. 한국 언론을 대상으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천천히 돌아보니 향후 나아갈 길이 더 선명해졌다는 것이다. '나투르 오크 쿨투르'는 한강 작가 작품을 스웨덴어로 출판한 곳이다.
실제로 한강 작가는 강연(7일), 수상 소감(10일) 등에서 자신의 '작품 세계 뿌리'라 할 수 있는 유년 시절의 조각들을 여럿 소개하며, 이를 '지금의 한강'과 연결 지었다. 노벨상 수락 연설 격인 강연을 통해선 1979년 썼다는 시 구절을 읊으며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해당 구절은 이렇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 사랑이란 무얼까? /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수상 소감을 통해서는 8세 때 비를 피하려다 다른 사람들도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는데 그때 그들 하나하나에 공감했던 것이 경이로운 경험이었다고 회상하면서 "책을 읽고 쓴 시간을 되돌아보면 저는 이 경이로운 순간을 몇 번이고 되새겼다"고 했다.
"수상 소감 줄인 탓, 번역가에 고맙단 말 못해"
수상 소감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말들도 이 자리에서 전했다. '번역가들에 대한 감사'가 대표적이었다. 당초 노벨상 연회에서 발표하려 한 수상 소감은 10분 분량이었는데, 시간 관계상 이를 4분 정도로 대폭 줄이는 과정에서 자신의 책을 전 세계 독자들에게 소개해 준 번역가들에게 고마움을 표한 부분이 잘려 나갔다며 한강 작가는 "우리는 문장마다, 문장 속에 함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내 작품은) 28개 또는 29개의 언어로 번역됐고, 번역가의 수는 50명 정도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톡홀름에 머무는 동안 인상 깊었던 일도 여럿 소개했다. 11일 스톡홀름 링케뷔에 있는 도서관에서 자신의 책을 읽고 창작시를 쓴 학생과의 만남을 첫 번째로 꼽았다. '애민'이라는 이름의 학생이 한강 작가의 소설 '내 여자의 열매'(한 여성이 식물로 변하는 내용)를 읽고 썼다는 시를 언급하며 그는 "너무 재미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의 시 내용은 이렇다. '내가 만약 토마토가 된다면 아주 맛없는 토마토가 될 거야 / 아무도 날 먹지 않게 / 아무도 나를 토마토수프에 넣을 수 없게 나무 꼭대기로 올라갈 거야.'
"이제 일상으로... 조용히 신작 쓰겠다"
스웨덴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의 생가를 린드그렌 증손자의 안내를 받으며 둘러본 것도 좋은 기억으로 꼽았다. 한강 작가는 어린 시절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감명받았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린드그렌 동화를 테마로 한 유니바켄 어린이 박물관을 찾았더니 해당 기관에서 평생 무료 이용권을 줬다며 "재미있고 감동적인 선물이었다"고도 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강 작가는 "'눈 3부작'을 마무리하는 소설을 이번 겨울까지 쓰려 했는데 (노벨상 수상으로) 준비할 일이 많아 늦춰졌다. 장편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된다고 말씀드렸던 책도 다음에 써야 한다"고 밝혔다. '눈 3부작'의 1·2부는 2015년 황순원문학상을 받은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과 2018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작별'이다. 한강 작가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조용히, 열심히 신작을 쓸 것이니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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