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카페·약국 등 소규모 소매점의 경사로 등 설치 의무 관련 법을 제대로 규정하지 않아 장애인 접근권이 제한됐다면 국가가 피해 당사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장애인 접근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한 첫 사례이자, 입법 공백이나 지연 등 국가의 ‘부작위’(행위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하지 않음)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최초 판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일 김명학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 구제 소송에서 정부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깨고 파기자판을 통해 “정부가 김씨 등 지체장애인 원고 2명에게 1인당 10만 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파기자판은 원심을 깨면서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대법원이 직접 판결하는 것이다. 소송 제기 6년 8개월 만이다.
대법원은 정부가 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을 24년 넘게 고치지 않아 장애인 접근권을 제한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1998년 제정된 이 시행령은 바닥면적이 300㎡ 이상일 때만 휠체어 경사로 등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도록 돼있다. 전국 편의점의 3%(2019년 기준)만 법 적용 대상이 되면서 “장애인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일상적으로 침해 받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감내해 왔다”고 대법원은 지적했다.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할 계기는 많았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09년 유엔장애인권협약 발효, 2024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권고,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권고가 있었지만 개선하지 않았다. 앞서 공개변론에서도 “장애인에게 집에만 있으면서 온라인 (주문만) 하라는 것이다”(오경미 대법관)는 등 재판부의 질타가 쏟아졌다.
어디 편의점뿐이겠나. 정부는 입법 부작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온 만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 강화는 물론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연구에 따르면 장애인 사회참여 보장을 위해 향후 10년 간 접근로·화장실 등 장애인 편의시설을 전체적으로 도입할 경우 편익이 3조8,222억 원에 달한다. 반면 설치 비용은 709억여 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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