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죄책감 못 느끼는 청소년 딥페이크 범죄

입력
2025.01.06 04:30
27면
0 0

작년 딥페이크 범죄 80%가 10대
호기심·금전 유혹 쉽게 빠져들어
왜곡된 성인식부터 바로잡아야

청소년 딥페이크 범죄의 가장 큰 문제는 가해자가 범죄의 심각성은 물론, 죄책감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일러스트 = 신동준

청소년 딥페이크 범죄의 가장 큰 문제는 가해자가 범죄의 심각성은 물론, 죄책감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일러스트 = 신동준


텔레그램 딥페이크 봇. 한국일보 유튜브 캡처

텔레그램 딥페이크 봇. 한국일보 유튜브 캡처


"안녕하세요, 저는 마법의 사진 봇입니다. 사진 속 여자를… 음, 시도해보시면 알게 될 거예요. 지금 바로 좋아하는 여자의 사진을…" 텔레그램 봇의 안내에 따라 사진을 올리면 5~6초 만에 자동으로 딥페이크 음란물이 만들어진다. 즉각적인 호기심 해결의 쾌감이 아이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몇 천 원, 몇 만 원 준다는 유혹에 주저 없이 여자 친구 사진을 보내는 아이들도 있다. 대개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 청소년 딥페이크 범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해 경찰이 검거한 딥페이크 범죄 피의자 573명 중 463명(80.8%)이 10대였다고 한다.

한국일보가 최근 제작한 미니 다큐멘터리 '딥페이크: 가짜 얼굴, 진짜 상처'는 여고생 민지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옆 동네 사는 초등학교 동창이 여성의 나체 사진에 민지의 얼굴을 합성하고 또다른 가해자가 이 이미지를 민지의 SNS 팔로어들에게 무차별 유포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유포자는 잡지 못한 채 4개월 만에 미제 사건으로 종결됐다. 가해자인 초등학교 동창은 그 사이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학교를 자퇴했다. 영문 모를 가짜 사진 한 장으로 댄서를 꿈꾸던 민지의 일상은 무너지고 말았다.

청소년 딥페이크 범죄의 가장 큰 문제는 가해자가 범죄의 심각성은 물론, 죄책감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치 장난처럼, 혹은 놀이처럼 딥페이크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에게 피해자는 사람이나 친구가 아닌 하나의 피사체이자 놀이의 재료일 뿐이다. 여기에 더해, 기존 법과 제도의 한계가 이들에게 '안 잡힐 거야'라는 기대를 품게 했다. 대다수 성범죄 유포 사이트가 마약·불법도박 사이트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딥페이크 범죄에 발을 들인 청소년들은 다른 범죄에까지 연루될 가능성이 높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회원들이 지난해 8월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딥페이크 피해 학교 전수조사 결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회원들이 지난해 8월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딥페이크 피해 학교 전수조사 결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지난해 11월 뒤늦게나마 딥페이크 범죄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강화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다행이다. 이제 방통위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딥페이크 영상의 게시 중단을 명령할 수 있고 수사기관은 위장 수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미성년자라도 형사처벌이 가능하고, 정보통신망을 통해 허위영상물을 반포한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도 있다. 딥페이크를 탐지, 추적하는 기술 또한 사진 한 장으로 가해자의 위치를 알아내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딥페이크 범죄를 뿌리뽑겠다는 경찰의 의지도 어느 때보다 강하다.

하지만 처벌을 아무리 강화해도 10대들의 왜곡된 성인식을 바로잡지 않으면 무너지는 제2, 제3의 민지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성폭력 및 젠더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난달 26일자 한국일보 보도 [“성범죄 고백하면 대신 용서해드립니다” 놀이문화가 된 혐오]에 따르면, 청소년들 사이에서 상대 성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행태가 놀이문화로 확산하고 있다. '여자는 남자가 부르면 3초 안에 대답해야 한다'는 식의 일명 '계집신조'가 10대 남성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자신이 저지른 성범죄나 일탈을 고백하면 운영자가 죄를 용서해주는 '고해성사' 계정도 SNS에서 흔하다고 한다.

왜 이성을 평등한 존재로 바라봐야 하는지, 조롱과 혐오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왜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초등학생 때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청소년들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박서강 기획영상부장

관련 이슈태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